국정조사제는 국정감사제와 함께 국회가 정부를 감독·견제하는 중요한 장치로서 17세기말 영국 의회에서 시작됐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국정조사제를 가장 활발하게 시행하고 있는 곳은 미국의회다. ◆우리나라에서 국정조사권이 발동되기는 1948년 8월26일 국회 결의에 의해 당시 서울시내에 살포된 불온문서에 대한 조사에 나선 것이 처음이다. 국정조사는 초대국회서 8대까지는 1백71회나 실시되었으나 유신국회이래 16년간은 단 한번도 없었다. 13대 국회에 들어와 비로소 5공 비리,광주사태,이철규군 변사사건 특별조사위가 가동됐었다. ◆선진국 의회에 비해 우리 국회가 특조권 발동에 특히 인색했음은 5·16이후의 정정과도 유관하다. 역대 집권당이 시국소란을 이유로 국정조사권 발동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14대 국회에 들어와 최근 모처럼 12·12사건,평화의 댐 및 율곡사업 등에 관한 특조권 구성을 결의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조사방법에 대한 합의를 여당이 돌연 백지화함으로써 국민을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그동안 국회 국방위와 건설위 소위는 조사를 진행해 가면서 대상자를 소환하는 소위 「포괄적 조사」에 합의했는데 이를 여당이 뒤집은 것이다. 여당측은 율곡사업 조사는 앞서의 감사원 감사와 중복되고 12·12사건은 대다수 당사자가 피고소중이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배제돼야 한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웠다. 이같은 뒤집기는 두 전직 대통령이 반발하는데다 TK지역(대구·경북) 보선에 영향을 주며 정국의 주도권이 야당에게 넘어갈 우려 때문이라는 뒷얘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이유는 설득력이 매우 약하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합의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국정조사는 부정 불법 오류를 가리자는 것이 아닌가. 오늘의 문민정부가 비리를 무작정 덮으려 했던 독재정권과는 달리 비리척결에 발벗고 나선 만큼 흑막을 규명하는데 무엇을 꺼릴 것인가. 민자당이 새 정치를 지향한다면 당당하게 조사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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