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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공학 내실운영 아쉽다(고교 교육을 살리자: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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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공학 내실운영 아쉽다(고교 교육을 살리자:25)

입력
1993.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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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교과개선 없이 실시교만 늘어/성별특성 고려한 시행령 정비 시급농어촌의 소규모 학교에서만 실시하던 남녀공학은 70년이후 급격하게 늘어나 지금은 우리나라 전체 고교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적절한 교육정책의 부재,「대학진학에 불리하다」는 근거없는 선입견,「남녀 7세 부동석」이란 유교적 전통가치관의 온존에다 시설미비 등 갖자기 벽에 부딪쳐 남녀공학은 제도 자체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채 교육행정 편의상 시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 남녀공학 고교수는 모두 7백3개교로 전체 1천7백35개 고교의 40.5%에 달한다. 2백67개교에 불과했던 70년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남녀공학고교의 증가현상은 특히 대도시에서 두드러져 70년에는 대도시 고교중 7%정도만 남녀공학이었으나 지금은 대도시 고교도 20%이상이 남녀공학이다.

농촌의 경우 남녀공학 고교의 대부분이 학생수가 부족하거나 규모의 영세성 및 재정부족으로 불가피하게 남녀공학을 실시하는데 반해 대도시 남녀공학 고교는 「평등주의 교육이념 구현」 「바른 이성관 정립」 등 새로운 교육이념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런 추세로 미루어 남녀공학은 나머지 고교에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크지만 남녀공학의 교육효과에 대해선 아직까지 회의적인 시작도 만만치않다.

남자학교인 A고교의 K교장(62)은 『신체적,정신적 차이를 무시한채 남녀 고교생들을 같은 방식으로 함께 가르칠 경우 학습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생활지도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며 남녀공학에 대한 반대입장을 밝혔다.

K교장은 또 『60년대 고교생들의 비행은 폭행이나 흡연·음주가 고작이었으나 70년대 이후에는 환각제 복용이나 성범죄,가출 등이 비행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며 『사회의 제반여건이나 분위기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남녀공학은 자칫 이같은 고교생 탈선을 부추길 수 있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또 중학교의 경우 남녀공학에 재학중인 여학생이 학업성취에서 남학생보다 유리하나 고교의 경우 학년이 올라갈 수록 여학생이 불리하다는 주장을 하는 교육학자도 있다. 중학교의 경우 여학생들의 정신연령이 상대적으로 높아 학급의 주도권을 잡는 등 모든 면에서 앞서가지만 고교에 진학하면 이런 상황이 역전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남녀공학 지지론자들은 이런 생각 자체가 남녀의 성차이나 역할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남녀공학의 증가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로 이를 거부하기 보다는 수용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견해는 점차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남녀공학은 60년대 이후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남녀분리고교가 상류층의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하는 방법의 하나로 여겨져 명문 사립고에서 남녀분리를 고집했던 영국에서도 60년대 말부터 남녀공학이 증가했고 미국에서도 남녀분리의 전통을 고집했던 명문사립고교들이 60∼80년에 대거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다.

취업 등 사회진출에서의 남녀평등이 이루어지려면 우선 교육에서의 남녀차별이 해소돼야 한다는 주장이 고조되면서 남녀공학 고교의 증가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게 교육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분리교육 견해도

서울시교육청의 강호봉 생활지도장학관은 『몇년전만 해도 남녀의 성차이가 분명해지는 나이인 고교생부터는 남녀를 분리해서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으나 이제 새로 설립되는 고교들은 대다수가 남녀공학을 채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장학관은 남녀공학의 장점으로 우선 이성을 자연스럽게 대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돼 일반적인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탈선이나 비행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 이성을 의식,행동이나 말씨가 순화되고 용모가 단정해지며,학업성취도도 높아질 뿐아니라 남녀분리학교 학생들보다 결혼 등 사회생활에 대한 적응력을 일찍부터 기를 수 있다는 것.

한국교육개발원이 87년 전국의 남녀중고교 48개교(남녀공학·남녀분리 각각 24개교)를 선정,학생(4천3백20명)과 교사(7백20명),학부모(1천4백40명)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는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조사결과 일반적으로 사고력 분석력 창의력 지도력에서는 남학생이,발표력에서는 여학생이 다소 앞서지만 실제 학업성취에선 남녀학생간에 별차이가 없으며 남녀공학의 경우 오히려 서로의 장점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으로써 전체적으로 교육효과를 높이는데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공학 고교에 근무하는 교사들도 대체로 이같은 의견에 동조한다.

서울 고척동의 이상인교사는 『이성에게 잘 보이려는 청소년기의 특징적인 심리가 공부를 포함한 학교생활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며 『난폭한 학생이나 이성관계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이 남녀분리학교에 비해 적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다만 운동회처럼 남학생들이 좋아하는 행사에 여학생들의 참여도 떨어져 행사진행에 애를 먹거나 벌을 줄 경우 여학생보다는 남학생을 더 다그칠 수 밖에 없는 점이 학생지도의 어려운 점』이라고 토로한다.

서울 공항고의 K교사는 『일반적으로 남학생은 같은 또래보다 점잖아지고 여학생은 학교생활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공부나 특별활동 등에서 적극적인 쪽으로 성격이 변하기 때문에 수업이나 학생지도에 큰 어려움이 없다』며 『그러나 학생들이 선생님보다는 서로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인지 남녀분리학교에 비해 사제가 격의없이 어울리는 시간이 적은게 다소 불만』이라고 말했다.

남녀공학고교 교사들은 이처럼 남녀공학의 교육효과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학생지도나 학교운영에서 아직은 개선돼야 할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가장 기초적이면서 시급한 문제가 시설문제다.

서울 개포동의 정재훈교장은 『전반적으로 남녀공학학교의 교육효과가 남녀분리학교에 비해 높다고 생각하지만 교육시설에서는 다소 떨어지는게 사실』이라며 『특히 재봉실이나 가사실 등 여학생을 위한 교육시설이 부족해 여학생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있다』고 말했다.

도시나 농촌 모두 남녀공학의 교육시설이 적정한 수준에 미달하는 실정이지만 농촌고교의 경우 더욱 열악하다.

○탈의실등 태부족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이 농촌의 남녀공학 22개교중 10개교만이 탈의실을 갖고 있었다. 그나마 정식 탈의실은 없고 교실에 커튼을 치거나 화장실 혹은 계단의 공간을 이용,임시탈의실로 사용하고 있다.

남녀학생별로 마련돼야 할 양호실의 경우도 대개 여학생만이 사용하고 남학생은 필요한 경우 교사 숙직실을 사용하는 학교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교과목의 운영에도 남녀공학 고교는 어려움이 많다. 특히 실업과목의 경우 남학생을 위한 공업,기술 등 과목교사와 여학생을 위한 가정 등의 교사를 따로 채용해야 하므로 경비가 많이 든다. 이 때문에 소규모 남녀공학고교에선 여학생을 위한 무용교사를 거의 채용하지 않아 무용수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밖에 내신성적 산출이나 진학지도 등을 남녀학생별로 따라 해야 하므로 교사들이 2중의 부담을 안고있다.

급격히 늘어나는 남녀공학 고교들이 이같은 문제점을 지니게 된 이유는 많지만 전문가들은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남녀공학의 교육이념과 정책이 명확하게 정립돼 있지 못하다는 점을 꼽는다.

미국과 유럽 각국은 『남녀분리학교 보다는 남녀공학이 남녀평등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적합한 교육체계』라는 뚜렷한 교육이념과 합당한 교육정책을 세워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교육부가 84년 고시한 중고교 교육과정 운영지침에는 『남녀역할에 대한 편견과 고정화된 사고방식을 갖지않게 균형있는 지도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이에 근거해 남녀의 평등한 역할관을 갖게하고 남녀간에 상호협력하는 가치관을 길러주는 것이 남녀공학 고교의 교육목표로 설정돼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나라의 남녀공학 고교는 확고한 이념과 정책이 없이 고교평준화 정책의 산물로 늘어났다는게 일반적 분석이다. 즉 학생수가 갑자기 늘거나 준 지역의 경우 남녀분리학교보다 남녀공학을 세우는게 배정의 편의와 교육재정의 부담을 줄이는데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마구잡이로 남녀공학고교를 늘려놨다는 비판이다.

교육법이나 시행령에 남녀공학의 특성을 고려한 교육시설 및 교과과정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은 점이 이같은 지적을 뒷받침한다.

전문가들은 양적으로 크게 늘어난 남녀공학고교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우선 남녀공학의 교육이념을 재정립한뒤 남녀공학의 특성에 맞는 교과과정을 개발하고 부족한 남녀공학의 교육시설을 확충,실효성있는 남녀공학 시설 및 설비기준령을 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대부고 이렇게 한다/30여년간 혼성학급 운영… 가정·교련분반/토론식 학습통해 남녀간 특성 이해 도와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는 58년 개교때부터 남녀공학·혼성학급 제도를 실시해오고 있는 우리나라 남녀공학의 효시격이다.

이대부고는 개방교육을 통해 자율적인 민주시민을 양성한다는 건학이념에 따라 사회분위기가 매우 보수적이던 50년대말부터 과감히 남녀 혼성학급제도를 실시,모범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설중·고교들은 대체로 남녀공학으로 개교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남녀혼성학급제도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이대부고의 경우 지난 30여년간 남녀공학 고교로서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축적,84년에는 서울시 남녀공학 운영시범학교로 지정됐다.

그러나 이대부고가 남녀혼성학급을 운영하는데 있어 특별히 독특한 교육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는 않다.

수업운영은 체육·교련·가정·기술·공업 등 남녀학생이 배워야 할 과목만 분반교육하고 나머지 전교과목은 혼성수업을 하고있다.

사회·종교·윤리 등 토론이 필요한 과목의 경우 강의식 교육이 아닌 과제를 먼저 준뒤 남녀 학생들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분단학습」(패널디스커션)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학생들의 표현능력을 향상시키고 의견을 논리적으로 정확히 발표할 수 있는 민주시민을 양성한다는 교육이념에 따른 것이다.

개방교육이념에 따른 혼성학급 운영으로 이 학교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갖는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다.

남녀 양성을 모두 존중하고 남녀의 특성을 이해시켜 개성을 길러주는 교육을 해야하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무심코 하는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학교 이병희교감(61)은 『사회의 모든 시설이 남녀가 함께 하게 돼있는데 성장기에 구태여 남녀를 떼어놓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며 『남녀혼성학급 등을 통해 청소년시절부터 남녀가 서로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남녀공학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이원락·김현수·장인철·여동은·현상엽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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