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전 나는 한 신문의 아침논단에서 8·15를 기쁘면서 슬픈 날이라고 하여 그 역사적 의미를 풀이한 적이 있다. 그렇다. 8·15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끝났다는 점에서 기쁘기 한량없는 날이었지만 바로 그날부터 조국의 분단을 강제당했다는 점에서 현대 한국의 비극의 출발이기도 했다.연중행사로 맞는 광복절이긴 하지만 특히 금년 8·15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첫째는 일본 문제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일본은 무엇이며 한일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1945년에서 1965년까지 국교가 없던 20년동안은 「반공」이 「반일」을 압도할 만큼 전면에 부각되던 시대였다. 그래서 미점령군은 「해방군」으로 자처하면서도 반공행정편의를 앞세워 친일세력을 이용했고,이승만은 항일의 영웅으로 대접받기를 바라면서도 국내 정치에선 일제의 인적·물적 유산을 재편성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도 우리 국민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한일 양국 지배엘리트간의 타협으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국민적 합의와는 아랑곳없이 맺어진 한일관계는 정치·경제적으로 「유착」이라는 형태로 동북아 냉전의 한쪽의 극을 형성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한일 양극 사이에는 엘리트간의 유착과 국민간의 불신이 자기 분열적으로 증폭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과거의 타성과 스타일에서 과감히 벗어날 때가 왔다. 왜냐하면 비정상적 한일관계를 가능케 했던 요인들이 거의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일본은 오랜 가상적국이던 소련이 무너졌고 한국에서 일본을 끌어들였던 권위주의적 개발독재체제도 끝이 났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정치제제 전반에 걸친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고 반냉전시대의 대미 자주노선과 함께 한일관계에서도 과거청산의 태도에 있어서 변화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유착과 불신의 한일관계에서 협력과 우호의 한일관계로 과감히 방향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나 새로운 시대를 같이 생각하면서 단순히 양국관계만이 아니라 두 나라가 주역이 되는 동북아 안보의 틀을 만들어 나간다는데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둘째,미국문제이다. 일본의 패망으로 주어진 8·15는 미소에 의해 강제된 분단을 낳고 말았다. 그리하여 한반도는 미소 냉전의 최초의 제물이자 최후의 유물로 남아있는 셈이다. 세계적 규모의 냉전이 붕괴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분단후 48년동안 이어져왔던 민족 내부의 비극은 과거 일제 35년의 악몽에 가리워 우리의 일상속에 매몰되고 잊혀져 왔다. 그러나 분할 점령,한국전쟁이 우리 민족 형제자매에게 가져다준 비극은 적어도 직접 체험한 사람에게는 가히 지옥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후 태생의 청·장년들의 문제의식에서 보면 민족분단은 절망과 허무의 장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그들은 단군연호나 서기를 쓰지 않고 가끔 「분단 몇년」으로 쓰고 있지 않는가. 뭐니뭐니해도 민족분단의 직접적 책임은 미국과 소련에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민족분단의 한쪽 책임자라는 이유만 가지고 그후 미국이 한국에서 한 일을 모두 부정할 수는 없다. 한국에 있어서 미국은 분명히 하나의 외압이며,외압은 자율만큼 바람직한 것은 아니나,문제는 외압 자체보다 그 외압의 객관적 역할을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이웃 일본의 경우 미점령군 사령관이 만들어놓은 민주헌법을 오히려 혁신정당이 더 받들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새삼스럽게 한말이래 한국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해 좋은 점,나쁜 점을 따져 열거할 필요할 느끼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제부터는 한미관계를 과거 냉전시대의 수지적 반공동맹관계에서 탈냉전시대의 현재와 미래의 자유사회,태평양시대의 협력자로서 상호 의존하는 우호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문민시대의 한미관계의 방향일 것이다.
셋째,통일문제이다. 멀지 않은 장래에 8·15는 통일한국의 정부수립이 될지 모른다. 광복과 분단이 교차하는 8·15가 통일의 날이 됨으로써 그야말로 제2의 8·15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임정」 지도자들의 유해가 온 국민의 기다림속에 귀환한 것도 뭔가 상서로운 조짐이다. 여러가지 징후로 보아 통일은 이제 동경의 대상으로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근접해오고 있음을 감지한다.
이론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통일은 남과 북이 각기 자기체제에 걸맞는 개혁에 성공하여 협상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반드시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우리는 의외성이 높은 갑작스런 통일이든 평화공존의 축적을 통한 비교적 시간이 걸리는 통일이든간에 통일이 결코 멀지 않은 장래에 도래할 수 있다는 확고한 전망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처럼 우리는 1993년 8·15를 중요한 역사적 계기로 삼고자 한다. 우선 한국은 미국과 일본을 새 시대의 우방으로 하는 상호 협력의 틀을 다시 짜고 그 틀속에서 새로운 우방인 러시아와 중국을 끌어안아야 한다. 그리고 이번 8·15가 통일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원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혁을 통한 국민통합을 이루지 못한 가운데 갑자기 맞게 된 통일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무서운 허탈감을 수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대 교수·한국평화원장>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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