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 지속되자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지수가 높아져간다. 김영삼대통령의 쾌도같았던 사정에 국민들이 보여줬던 환상적인 지지도 80%대가 흔들리게 됐다. 클린턴 미 대통령,메이저 영 총리,미테랑 불 대통령,콜 독일 총리 등 다같이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선진국 정상들의 인기도는 30%대다. 구 소련의 공산체제가 붕괴된 냉전이후의 세계질서에서 절대다수의 나라에서 경제가 제1우선의 정책과제다. 고통은 끝이 보이면 참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불황도 마찬가지다. 지금 약 40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불황은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김 대통령은 『경제가 내년에 활력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여러가지 경제상황으로 봐 경기가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나 얼마나 살아날지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답답한 것은 정부로서도 딱 부러진 묘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불황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킨다.정부는 오늘(11일) 청와대에서 김영삼대통령에게 보고하기에 앞서 9일 이경식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주재로 가진 경제장관 회의에서 금리인하,통화량 증대같은 추가적인 경기부양대책보다는 신경제 5개년 계획에 제시된 경제운용계획을 추진해가기로 했다. 정부는 신경제 1백일 계획에서 실패한 부양책을 다시 시도하는 경우 경기활성화보다는 오히려 물가상승을 자극,안정을 깨뜨릴 위험성이 크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는 것이다. 대신 정부가 당초 계획안대로 도로,항만,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가급적 3·4분기에 앞당겨 집행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운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들의 투자분위기 조성을 위해 업종전문화,조선산업합리화(대우조선과 중공업의 합병 등) 철폐여부,자동차 신규참여 허용여부,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 등 한국산업과 재계의 판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현안을 조속히 매듭지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올 여름의 이상저온으로 농작물의 냉해가 심각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앞으로 더위가 한번은 있을 것으로 예상돼 지켜봐야겠다. 어떻든 여론의 향배에 민감한 문민정부로서는 획기적인 처방을 내놓을 수 없는 것이 딜레마라면 딜레마라하겠다. 그러나 어설픈 부양책으로 경제를 낭패케하는 것보다는 현행의 「신경제 5개년 계획」 견지가 보다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미국·일본·EC 등도 신중하다. 이들 선진국들은 돈풀고 금리낮추는 케인스적인 접근을 하지 않는다. 생산성의 향상 등 경쟁력 제고로 탈불황을 시도하고 있다. 「경제구조재편성」에서 답을 찾고 있다. 일본이야 세계 어느나라보다 빨리 경영과 기술혁신을 해가고 있다. 미국도 EC 보다는 몇발 앞서 있다. 지난 2년여동안 미국에서는 GM,IBM,웨스팅 하우스,아메리칸 익스프레스,애플사 등 간판급 기업들의 경영진이 교체됐고 부실공장의 폐쇄,인력감축 등 경영합리회가 추진돼왔다. 팬암같은 항공사는 파산됐다. 경쟁력 없는 기업은 냉혹히 도태됐다. 미국식 자본주의 전통대로 시장경제의 원리를 통해 산업구조 조정이 추진돼왔다. EC 등은 강력한 노조,보조금 지급의 관행 등으로 미국처럼 구조조정이 빨리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한국도 이제는 선진권 경제를 노크하는 신흥공업국 경제다. 경제의 구조개편으로 국제경쟁력을 배양치 않고는 경제전에 살아남기 어렵다. 「신경제 5개년 계획」은 사실상 한국경제의 재편성계획이다.
경기가 잘 돌아간다면 이것을 추진하기가 훨씬 용이하겠지만 그렇다고 불황이라고해서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금리자유화 등 금융자율화에서부터 토지,산업,세제,과학,기술부문,행정규제완화에 이르기까지 「신경제 5개년계획」에 채택된 각 부문의 개혁계획을 차분히 실행에 옮겨가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경제구조 조정의 폭과 속도는 경제여건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 「신경제」가 활력을 잃지 않도록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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