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메이저,각국 통화 폐지에 이의/독일선 통합시기 연기논의 시사유럽환율체계(ERM)내 통화간 환율변동폭이 조정되면서 유럽통합의 축인 ERM체계의 위기론이 영·독 등 주요국가들로부터 급격히 제기되고 있다.
ERM은 지난 7월말 유럽외환시장의 대혼란이라는 현실적 난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기축통화간 연계를 이완시키는 극약처방으로 간신히 명백을 유지했으나 허약체질에 대한 근본적 우려를 증폭시키면서 이미 합의된 통화 통합의 전제마저 뒤집으려는 위협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같은 ERM의 위기는 이미 내연돼온 것이기는 하지만 유럽통합의 주도세력인 독일과 국내의 이견차로 우여곡절끝에 마스트리히트조약으로 향한 막차를 탄 영국에서 나왔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유럽통합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받아온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는 9일 『유럽공동체(EC)의 통화위기는 독일의 책임이 아니며 오히려 EC 국가들의 재정관리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타국들의 태도에 불쾌감을 표시한뒤 『오는 10월 EC 정상회담에서 통화통합의 연기문제가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통화통합의 지연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 2일 ERM내의 통화변동폭을 확대조정한뒤 통화문제와 관련,독일 총리로서 처음으로 행한 언급치고는 원론적 의구심을 담은 발언으로 평가된다.
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보다 구체적으로 단일통화 채택의 전제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최근 영국언론들은 메이저 총리가 단일통화로 가는 과도체제인 ERM 대신에 기존의 유럽통화단위(ECU)를 단일통화로 사용하고,이를 현재의 각국 통화와 병용하는 대안을 EC 정상회담의 안건으로 제출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메이저 총리의 제안은 일반적인 결제수단으로는 사용되지 않고 EC 회원국들이 EC 예산 등의 계산단위나 정부채 발행의 단위로 사용하는 가상통화인 ECU를 현실화시키자는 대안인데 각국 통화를 살려두자는 얘기이다. 91년 기존의 각국 통화를 완전히 폐지하자는 마스트리히트조약의 통화통합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영국이 이처럼 ECU 병용카드를 꺼내든 것이 새삼스러운 사실은 아니다. 영국은 12개 EC 회원국들중 유일하게 단일통화와 공동사회정책에 참여를 유보하는 등 「하나의 유럽」 움직임에 꾸준히 제동을 걸어왔다. 이 때문에 통합과정에 주도권을 상실한 것은 물론 회원국들 사이에 불신과 경계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메이저 총리의 의도는 ERM의 혼란으로 고개를 들고 있는 회의론에 편승해 현실을 토대로 하는 절충안으로 독·불 중심의 유럽통합과정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포석의 일환으로 보인다.
최근 유럽 외환시장의 현실은 콜 총리의 우려와 메이저 총리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는게 사실이다. 단일통화를 채택하기 위해서는 회원국들간 환율변동폭을 좁혀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변동폭을 오히려 넓혀감에 따라 단일통화 추진은 뒷걸음질친 셈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원국들이 메이저의 대안에 선뜻 동의하거나 통합자체를 뒤집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마스트리히트조약에서 구체화된 통합목표는 단순한 단일통화와 채택뿐 아니라 정치경제 연방체를 지향하는 원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실적 장애와 회원국들의 견해차에 부딪치면서 유럽통합의 형태는 여러차원의 검증을 거쳐 보다 유연한 구조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런던=원인성특파원>런던=원인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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