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당의 갈팡질팡으로 국회 국정조사활동이 벽에 부딪쳐 버렸다. 지난달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의 요구로 발동된 국정조사는 한달 가까운 진통끝에 겨우 가닥을 잡아가는듯 했으나 민자당의 돌연한 입장선회로 인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민자당측은 입장선회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누구도 그렇게 생각지 않는게 현실이다. 대구동을의 정당연설회에 내려가느라 바빴던 지난 9일 아침 김종필대표를 위시한 주요 당직자들은 예정에 없던 대책회의를 열어 『사전에 조사대상과 범위를 확정해야 한다』고 결정해버렸다.
물론 속뜻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이같은 당론 결정은 종전까지 민자당이 대야협상에서 취한 자세와는 크게 다르다. 지난 2일 이만섭 국회의장 주재로 있은 여·야 총무회담에서 민자·민주 총무는 「빠른 시일내 조사계획서 작성」에 합의했었다. 두 총무는 또 『이번주중 계획서를 작성,다음주에 상임위에서 의결하고 보선직후 본회의를 열어 최종 확정한뒤 8월말부터 조사활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따라 지난 4일 국방위에서는 「조사주체는 국방위,조사기간은 20일」로 합의했고 9일로 예정됐던 국방위에서는 일단 활동에 들어간뒤 구체적 조사대상을 정하기로 하는 내용의 계획서를 작성할 계획이었다.
그때까지 민자당은 국정조사에 들어간 다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저지한다는 방침이었으나 갑자기 「조사에 들어가기전에 전직 대통령 조사 불가방침을 확실히 해두자」는 쪽으로 입장이 바뀐 것이다.
처음부터 국정조사가 불필요했고 더구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있을 수 없다는 민자당의 속마음만을 본다면 『당의 입장은 일관돼왔다』고도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절차적 문제라도 『이쪽 길로 가자』고 했다가 느닷없이 『저쪽길로 가는게 맞다』고 말하는 것은 누가봐도 설득력이 없다.
게다가 한술 더 떠 『국정조사권 발동요건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겠다』고 말하고 나선 것도 어설프다. 현행법이 잘못됐으니 그에 따라 발동권 국정조사권도 잘못이라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민주정치가 타협의 산물이라면 일단 이루어진 합의는 지켜야 한다는 것을 민자당은 보여줘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