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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잊지 않는 것(장명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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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잊지 않는 것(장명수칼럼)

입력
1993.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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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유해를 모셔오기 위해 누구보다 애썼던 김준엽 전 고대 총장은 임정요인 다섯분의 유해가 국립묘지에 도착한후 연일 줄을 잇는 참배객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지난 10여년은 유해봉환에만 신경을 썼으나,막상 유해를 모시고 상해를 떠나 서울로 올 때는 국민들이 어떻게 맞아줄지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분들이 돌아가신지 70여년이 지났고,임정이란 이미 역사에 묻힌 과거인데,국민이 과연 얼마나 따뜻하게 맞아줄지 불안했습니다. 그랬는데 지난 며칠동안 국립묘지를 찾는 추모행렬을 보니 눈물겹습니다. 이제 비로소 그분들을 고국땅에 모셨다는 실감이 납니다』

일본유학중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출하여 광복군으로 활동했던 김준엽씨는 이번에 환국한 신규식선생의 외손사위이기도 한데,그가 국립묘지의 추모인파를 보며 느끼는 남다른 감회를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할뿐 아니라 우리도 똑같은 감동을 느낀다.

모두에게 다 잊혀진 것처럼,해방된 고국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처럼,망명지 중국의 공동묘지에 70여년간 누워있던 독립운동가들을 국민은 잊지 않고 있었다. 잊지 않았을뿐 아니라 뜨거운 추모의 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국립묘지에 줄을 잇는 남녀노소의 얼굴에서 그것을 확인하며 우리는 새삼 눈물겹다.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해방이 되었으나 우리는 일제 36년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 반민특위가 구성되었지만 민족반역자들을 일부 상징적으로 처단하는데 그쳤고,대부분의 친일파들은 계속 건재했다. 독립운동가였던 이승만대통령은 친일파들을 끌어들여 권력을 유지했다. 친일파들은 법적으로도,도덕적으로도 심판받지 않았다.

해방된 나라에서 혹독한 고난을 겪은 사람들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싸웠을뿐 자기 자신을 위해 아무런 비축이 없었던 그들은 막상 나라를 되찾자 무능력자로 전락했다. 그들이 만주벌판에서 싸우는 동안 버려졌던 자녀들은 대부분 교육을 받지 못했고,빈곤이 대물림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다는 보람과 영광은 이름이 잘 알려진 애국열사들의 것이었다. 이름없이 싸운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에게 남겨진 것은 가난과 병고와 가족의 한탄이었다.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으나 민족의 정기를 되찾지는 못했다. 민족을 배반했다는 것이 죄가 아닌 무서운 풍토에서 우리는 살았다. 2차대전후 독일 프랑스 이스라엘 등이 소급법을 만들어 전범과 민족반역자들을 무기한으로 추적하고 처단하는 것을 우리는 구경만 했다. 우리의 민족정신은 죽었던 것일까.

지난 며칠동안 국립묘지에 줄을 잇고 있는 추모행렬은 『아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민족이다』라고 말해준다. 해방후 반세기동안 힘을 잡은 친일파들이 지워버리려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은 국민의 가슴에 살이있었다. 국립묘지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국민이 잊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외경심이다. 국민이 잊지 않는 모든 것들은 살아있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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