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광복군 출신/김준엽 사회과학원 이사장(월요초대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광복군 출신/김준엽 사회과학원 이사장(월요초대석)

입력
1993.08.09 00:00
0 0

◎“민족정기 정립이 개혁의 시발점”/「관존민비」사상 버려야 나라가 발전/역사의 신은 “정의와 선이 승리” 강조/뒤늦은 임정 선열 5위 환국 “부끄러운 일”중국 상해에 묻혀있던,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다섯분의 유해를 5일 국립묘지에 모신후 김준엽박사(73·전 고대 총장·사회과학원 이사장)는 남다른 감회에 젖어 있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여러경로를 통해 중국에 묻혀있는 독립운동가들의 묘를 찾으려 애썼고,88년 상해에 가서 임정요인들의 묘를 직접 확인했으며,유해가 봉환되기까지 큰 역할을 했다. 젊은날 광복군 대원으로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그에게 임정요인들은 정신적인 지주였고,이번에 봉환된 5위중 한분인 신규식선생은 그의 아내 민영주여사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광복군의 기개를 한평생 간직하고 살아온 김준엽박사를 만나 임정요인들의 유해봉환이 오늘의 우리에게 갖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

▼임정요인 다섯분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모신후 참배객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그분들을 모셔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이번에 오신 박은식·신규식·노백린·김인전·안태국선생은 대부분 1920년대에 세상을 떠나신 분들이니 돌아가시고 나서 70여년,광복되고 나서 50여년만에 모셔오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중국과 국교가 없었다해도 후손으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내 경우에는 장모님(신명호씨·90년 87세로 작고)이 신규식선생의 외동따님으로 아버님 유해 모셔오기를 평생 소원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80년대 초부터 중국을 방문하는 재미교포와 우리 기업인들을 통해 임정요인들의 묘가 남아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해왔습니다. 그러나 문화혁명때 묘지가 파손되고 일부는 화장을 해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등 불분명한 소식만 들려왔습니다. 지난 88년 40년만에 중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상해의 외국인 묘지인 만국공묘에 가서 그분들의 묘를 찾아냈습니다. 그후 다른 유가족들과 유해봉환을 추진해오다가 91년 중국측으로부터 「비공개로 하면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나 광복후 김구선생의 개인자격 귀국에 한이 맺혔던 우리는 임정요인들이 또다시 개인자격으로 환국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국교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던 것입니다. 작년에 중국과 국교를 맺은후 보훈처가 적극 나섰고 새정부 출범후 김영삼대통령이 큰 관심을 보여 이 일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중러 선열 찾기 계속

▼북한은 임정요인들의 유해를 남한으로 봉환하는 것에 반대해왔고,그 때문에 중국이 신경을 많이 썼는데,북한이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를 모셔간 적이 있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그러나 남한이 모셔간다고 하니 임시정부의 법통문제와 연관이 된다는 생각에서 반대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안중근선생의 묘를 찾는다면 북한은 무슨수를 쓰더라도 모셔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 선생은 여순의 공동묘지에 묻혔다고 알려졌을뿐 위치를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로서는 이제 길을 텄으니 중국과 러시아에 묻혀있는 독립운동가들을 계속 모셔오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광복된지 48년만에 임정요인들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모시면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새겨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부끄러운 민족으로 살아왔는가를 깨닫고 이제부터라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겼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그에 못지않게 부끄러운 것은 광복후 친일파들이 활개를 치며 살게 했다는 것입니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가난에 허덕였으나,친일파들은 일제하에서 쌓은 배경으로 계속 잘 살았습니다. 이런 풍토에서 누가 역사를 두려워하고,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정의와 도덕을 생의 지표로 삼겠습니까. 민족을 배반한 것이 죄가 안되고 부끄럽지 않은 나라에서 다른 무엇이 죄가 되겠습니까. 돈과 출세와 이득을 위해 수단방법 안가리게 된 오늘의 총체적 타락은 광복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던 결과입니다. 정통성이 없는 독재정권에 협조했던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워할줄 모르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요즘 개혁,개혁하는 소리가 높은데 개혁의 실마리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에서 찾아야 합니다』

▼임정의 법통을 잇는다는 역사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대통령은 다 아는 바와 같이 일본군 장교 경력이 있고,집권후 헌법을 개정할 때 전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 부분을 삭제해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문민정부가 출범하여 과거의 부정적인 역사를 새로 평가하면서 임정요인들을 국립묘지에 모시게 됐다는 것은 명실상부하게 임정의 법통을 잇는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함께 일제 36년을 피침사로만 부각하지 말고,일제에 맞서 싸운 민족저항의 독립운동사로 재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해져야 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정신적으로 임정의 법통을 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독립유공자 표창을 받은 분들중 친일경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입장입니까.

『지난번에 몇분의 이름이 거명되었는데,그들 한사람 한사람의 행적을 객관적으로 조사하여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친일 행적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매도하는 것에는 반대입니다. 친일경력보다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이 압도적으로 크다면 우리는 그의 공을 인정해야 합니다. 일제가 얼마나 혹독하게 우리 국민을 탄압했으며 친일을 강요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도층일수록 본의아닌 친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 시대에 살지 않았거나 국내에 없었기 때문에 친일과 무관했던 사람들이 무조건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조금 썩은 사과먹자

▼과거 군사독재에 협력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입니까.

『우리는 지금 인재가 부족하여 「조금 썩은 사과는」는 버리지말고 먹어야 할 형편입니다. 주도적으로,직접적으로 나쁜 일에 간여한 사람이 아니라면 「청산대상」으로 못박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나는 일제때 친일을 한 적이 없고,군사독재에 협력한 적이 없기 때문에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런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의 힘만이 극일

▼선생님은 조각·개각이 있을 때마다 가장 많이 국무총리 물망에 올랐던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오를만하다고 풍자한 신문 만화가 있었습니다. 관직을 안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존경하는 분들은 한평생 학문을 하면서 문화운동으로 그 나라의 발전에 기여한 분들입니다. 일본 경응대 창설자인 후쿠자와 유기치,중국 북경대 총장을 지낸 채원배선생 등은 나의 청년기에 많은 영향을 준 분들입니다. 광복후 중국에서 귀국하면서 나는 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했고,그분들처럼 학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또 우리나라가 발전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관존민비사상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군사독재 아래 많은 학자와 언론인들이 자기 동료와 제자들은 감옥에서 고생하는데 하루 아침에 정부로 들어갔던 것도 바로 관존민비사상 때문입니다.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선비들이 관직밖에 할 일이 없었으나,오늘같은 산업사회에서 관직을 제일로 치는 것은 후진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김영삼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개혁에 큰 진전을 보인 것은 사실이나,나라를 이끌어가기 위한 정신적인 기둥을 하루빨리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중국 등 개발도상국들의 맹렬한 추격을 받고 있고,국내적으로는 통일에 대비해야 하는 벅찬 짐을 지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속에서 우리는 민족정기와 도덕성을 회복하여 물질만능주의·인간경시·이기주의·부정부패를 몰아내고,민족적 자부심과 합리적인 민주시민 정신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새로운 역사의식과 정신무장 없이는 국내외의 도전을 이겨내기 힘들다는 것을 직시할 때입니다』

▼선생님은 「역사의 신」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셨는데,오늘 그 신은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역사의 신은 우리에게 오늘을 보고 살지 말고,역사를 보면서 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겐 절망과 좌절도 많으나,진리와 정의와 선은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광복의 날이 그처럼 빨리 오리라고 생각지 못했고,군사독재 아래서도 민주화의 날이 곧 오리라는 희망보다 절망을 느낀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역동하고 있습니다. 문민정부의 탄생을 보면서,그리고 이번에 임정요인들의 유해를 모시면서,다시 한번 역사를 생각하게 됩니다』<대담:장명수 편집위원>

□약력

▲1920년 평북 강계 출생

▲신의주고보 졸업

▲44년 일본 경응대 재학중 학병으로 끌려가 중국에서 탈출 광복 군 대원이 됨

▲49년 중국 국립중앙대 대학원 졸업

▲49년 고대 교수 82∼85년 고대 총장

▲저서 「장정」 「한국공산주의운동사」 「중국최근세사」 「중국공산 당사」 등 다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