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딩」비란 착륙 또는 양륙비용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낯선 말이 어느새 우리 의료계의 비리를 드러내는 대명사가 되었다. 제약 및 의료기기 업자들이 큰 병원에 대한 납품을 성사시키기 위해 마구 뿌려온 엄청난 뒷돈들이 바로 랜딩비의 감춰져온 실체다.서울경찰청이 이같은 랜딩비 수수 고질에 대한 일제 수사에 나서 9개 대학부설 종합병원과 10개 제약회사 대표들을 무더기 입건한 것은 의료비리에 대한 사정차원의 본격 대응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갖게 한다.
수사결과 지난 3년간 9개 대학병원들은 이들 제약회사로부터 무려 3백6억여원의 기부금으로 위장된 랜딩비를 받았다. 이밖에도 14억6천여만원의 임상연구비와 향응·골프접대·세미나비 지원 등 20억9천여만원,그리고 삭감당한 보험금까지 제약회사로부터 보전받았다고 한다.
이런 한심한 실상은 건전한 의료풍토 및 의약품 유통구조를 왜곡시켜 결과적으로 국민의 건강권을 크게 침해할 뿐 아니라 환자부담을 누증시키는 부작용을 빚어왔을게 불을 보듯 환하다.
말로는 기부금이라지만 납품을 전제로 한 것이면 분명한 불법 뇌물성 사례금이 된다. 또 그런 돈이 약값의 30%에 육박한다니 결국 약값만 비싸져 환자부담이 가중되게 마련이다. 제약회사도 좋은 약 만들기보다는 섭외에 더욱 열중,결과적으로 제약업의 수준저하를 초래하면서 의료진의 좋은 약품 선택기능도 좁혀 의료계 타락과 국민 건강권 위협의 악순환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랜딩비 수수의 엄청난 해악에 관해서는 의료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소리가 높아온게 사실이다. 지난 6월 월드리서치연구소의 여론조사결과 의료인 2명중 1명 이상이 제약회사 관련 사례금 수수문제가 심각함을 지적하고 그 대책으로 의약품·의료기기업체의 금품제공행위 처벌의 법제화와 병원공급 약품의 정찰제 시행 및 의료종사자의 각성을 강조한바 있었다.
이번 랜딩비의 사법적 처리를 놓고 일부 의료계 내부에서는 제공된 돈의 대부분이 부족한 의료시설 및 병원 운영비로 사용됐으므로 기부금으로 보아야 한다는 반발이 있는줄 안다. 하지만 이런 딱한 현실은 납품과 상관없는 순수 연구비 지원제도 등의 장치마련과 의료보험수가·제도의 현실화·개선으로 대처하는게 바른 길이다. 그리고 그런 바른 길을 두고 랜딩비에 매달려온 의료계 자체의 뼈저린 반성이 오히려 시급하다 하겠다.
의료비리의 사정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이번의 랜딩비 부조리뿐 아니라 전공 및 수련의 선발과정의 금품수수,과잉진료 및 투약,진료비 과다청구 및 급행료 등 사정대상에 올라야할 의료계 비리는 아직도 많다.
그러나 의료문제는 국민의 건강권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사정일변도의 접근으로는 문제의 본질을 그르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제도적 개선과 의료계 자성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지혜롭게 과거의 고질을 청산해야 할때임을 강조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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