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협상하기 가장 힘든 상대”/“핵사찰 유예기간 넘기면/안보리에 경제제재 요청”/“문민정부 출현 보람찬 시간보내/한국언론들 출입처 의존 지나쳐”6일 이임하는 레이먼드 버가트 주한 미국 대리대사(48)는 지난 5일 본사 기자와의 단독회견에서 『2월 그레그 대사 이임후 6개월간 대리대사를 맡아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나 김영삼 문민정부의 새인물들이 많이 도와주어 큰 어려움 없이 지냈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3년반의 임기동안 가장 신경이 쓰인 것은 역시 「북한문제」였으며 이는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이후 계속된 신경전 때문이었다고 말했다.<편집자주>편집자주>
대사께서는 서울에 부임하기전에 북경서 근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미·북한 고위급회담의 사전 접촉형식으로 89년 열린 북경 참사관급 회담에서 북한측 대표와 접촉했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대화파트너로서 북한 관리들이 어떠했습니까. 상대하기 힘들지 않던가요.
▲한국인들은 모두 협상하기 힘든 상대입니다. 솔직히 북한이나 남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민족은 어쩌면 이점에 자긍심을 느끼지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웃음). 어떤 나라든지 북한과의 협상을 매우 불안 초조하게 생각하는듯 합니다. 미국은 지난 40년 이상 구 소련,중국,쿠바,베트남,니카라과 등 다루기 힘든 상대와 협상을 벌여왔지만 가장 거친 상대는 역시 북한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고위급회담에 발탁된 갈루치 국무차관보 이하 미국측 대표들은 매우 능숙한 협상가이자 군축문제 최고전문가들입니다. 때문에 북한이 이들을 기만하거나 웃음거리로 만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한 접촉을 바라보는 대사의 견해는.
▲지난 3월 북한의 잡작스런 NPT 탈퇴로 미 행정부가 당황한 것은 사실입니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부임지의 대사인 내 자신이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않았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미국이 기본적으로 견지하는 입장은 북한과의 쌍무회담을 어떤 식으로든지 지속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요구한 특별사찰에 응하지 않는다거나 남한측과 합의된 한반도 비핵화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다음번엔 양국 회담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더이상의 회담이 명백한 시간낭비라는 판단이 서면 미국은 즉각 유엔안보리에 대북한 제재를 요청할 것입니다.
북한이 지난달 제네바회담에서 미국과 합의한 내용은 영변 핵시설에 대한 사찰과 관련해 IAEA와 협의를 갖겠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따라 서울측과 남북한 상호 핵사찰 실시에 관해 논의한다는 점도 합의했습니다.
북한은 아직 어느쪽과도 구체적인 절차이행을 위한 협의를 시작하지 않았지만 빨리 서둘러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이 제의한 핵통제 공동위원회 설치문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를 희망합니다.
다행히 북한은 3일 IAEA 사찰단을 입국시키는 등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이 북한이 NPT에 완전히 복귀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미국이 설정한 두달의 유예기간이 자꾸 흘러가고 있습니다. 미국은 영원히 앉아서 기다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북한이 만약 두달간의 유예시효를 넘기면 미국은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미국은 대화를 통해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진전내용이 없을 경우 안보리에 요청,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결의안 채택을 요청할 것입니다.
미국은 가능한한 이같은 불행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제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밀어붙일 준비가 돼있습니다.
만일 미국이 이번 북한의 NPT 탈퇴로 파생된 문제를 흐지부지하게 처리하면 타국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될뿐만 아니라 사실상 이 조약의 실효성이 상실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는 일본,독일,프랑스 등 여타 서방국들도 심히 우려하는 부분입니다.
지난번 미·북한 고위급회담에 있어 한국의 의견이 배제됐다는 일부 비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 6월 뉴욕에서의 첫번째 회담은 사실상 한국측의 요청과 격려에 의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이 이같은 한국의 요청을 충분히 고려했고 이와관련,한국정부측과 긴밀히 협의했습니다.
나 자신도 한완상부총리와 한승주 외무장관,정종욱 외교안보수석 등과 수시로 접촉하며 긴밀히 협의했습니다. 따라서 그같은 시각은 그간의 진행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해 생긴 오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한미 양국관계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보다 더 동등한 관계로 발전하리라 생각합니다. 여태까지 그러했듯 양국은 중요한 안보 경제 상대국으로 서로에 대한 인식도를 높여갈 것입니다.
하지만 적잖은 미국 기업인들이 날이 갈수록 한국에서 「장사」하기 힘들어 진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특히 투자분야에서의 볼멘소리는 더욱 심합니다. 각종 규제가 지나치다는 지적입니다. 예컨대 태국같은 동남아국가에서 3개월 정도면 처리될 일도 이곳에서는 3년 이상 걸립니다.
이런 난제들이 선결돼야 양국관계는 바람직한 형태로 발전할 것입니다.
한국에 계시는 동안 즐거웠던 추억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한국엔 거의 3년반동안 있었지만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지난 몇달간이었습니다. 지난 2월 그레그 전 대사가 이임하고난후 과연 직무를 잘 대행할 수 있을까하는 조바심이 앞섰습니다. 새로 출범한 문민정부와의 원만한 관계유지도 걱정거리였습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해줄까도 매우 궁금했고요.
그러나 다행히 김영삼대통령 이하 모든 각료들이 호의적으로 대해주었습니다. 특히 한승주 외무장관과 정종욱수석은 매사에 긴밀한 논의 상대역이었습니다. 때문에 일과 관련해서는 요 몇달간 대리대사를 맡으면서 매우 보람찬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여가시간은 대부분 서울을 빠져나와 시골을 여행하는데 보냈는데 거의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 돌아다녔습니다. 평소엔 한국인 친구들과 관악산 북한산 등 서울 주변의 산을 자주 올랐고 기회가 되면 광주 무등산이나 가야산 등지도 종종 찾았습니다.
지방에 자주 들르셨으면 그곳 토속음식맛도 즐기셨을텐데요.
▲한번은 부산에서 전국 유일의 양불고기 집을 가봤는데 그때 그맛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또 무등산 정상부근 야외식당에서 맛본 오리탕도 아주 별미였고요. 하지만 음식에 관한한 전주가 으뜸인 것 같습니다. 도시분위기 자체가 넉넉함을 풍기는데다가 비빔밥 등 음식메뉴가 다양했습니다.
다음 임지는 어디입니까.
▲일단 뉴욕으로 돌아가 몇달 동안은 연구활동에 전념할 것입니다. 외교관이란 숙명 때문에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한곳에 체류한 기간이 평균 3년입니다. 다행히 가족들이 이를 불평하지는 않습니다만….
때때로 서울 주재 미 외교관들이 한국언론의 보도태도에 불만스러워 한다고 듣고 있는데요.
▲과거 군사정권하에서 한국언론은 정상적인 보도활동을 보장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언론에 통제와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위주의체제에서는 올바른 언론의 싹이 움트기 힘든게 당연합니다.
한국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언론을 구가하게 된지는 불과 5∼6년전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아직은 심층추적보도의 전통이 미약하고 대부분의 경우 지나치게 출입처의 정보에 의존하고 있는듯 합니다.
특히 외무부나 재무부 등에서 나온 미국 관련 뉴스는 거의 대사관에 확인하는 일없이 그대로 보도됩니다. 우리쪽에선 소명이나 배경설명의 기회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점은 저뿐만 아니라 서울주재 다른 서방 외교관들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떤때는 취재원의 익명성을 무기로 다분히 무책임한 추측보도가 판칠 때가 많은데 「…로 알려졌다」나 「…로 전해졌다」식의 기사형태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관행은 점차 개선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김영걸기자>김영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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