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돌보는 사람도 없이 중국 땅에 묻혀 있었던 임시정부 요인 다섯분을 모셔오기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렸다.안태국선생의 경우 눈을 감은지 73년만에,그리고 국무총리를 지낸 신규식선생은 71년만에 돌아왔다. 광복후로 쳐도 48년만에 다섯분을 모셔왔으니 순탄치 못했던 우리의 주변환경 탓이기도 했지만,부끄럽고 면목없는 일임엔 틀림없다.
다섯분 선열을 모셔왔다는 사실이 주는 감격과 역사적 의미는 그만큼 크다. 오늘 다섯분의 유해를 모셔옴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었다는 헌법정신을 떳떳이 다짐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그동안 이 다섯분에 대해 건국훈장의 영예를 올리고,또 민족적인 사표요 영웅으로 자라나는 세대에 일러왔다. 이 다섯분이 맡은 역할과 사명은 제각기 달랐지만,국권의 명백을 보존하는 가시밭길을 택했다는 뜻에서는 다름이 없었다.
2대 대통령 박은식선생은 「한국독립운동 지혈사」 등 수많은 글로 구국에 몸바친 지식인이요 투사였다. 국무총리를 지낸 신규식선생과 노백린선생은 무인의 길을 걸은 투사였고,의정원 의장을 지낸 김인전선생은 한국노병회의 군자금 조성을 위해 가산을 기울였다. 신민회의 서도총감을 맡았던 안태국선생도 결사대원 8백명을 규합한 실천적 선열이었다.
지금까지 글과 책으로만 일러왔던 선열들의 입김을 우리는 이제 국립묘지의 임정요인 묘역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됐다. 단순한 정치적 법통의 재확인보다 더 크고 깊은 역사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뜻에서 다섯분의 유해를 맞이하는 오늘부터 10일 국립묘지에서의 영결식과 안장식에 이르기까지 엿새동안 우리는 특별한 마음가짐으로 선열들을 기리고자 한다. 또한 백범 김구선생이 안장된 서울 효창공원과 함께,국립묘지의 임정요인 묘역을 새로운 민족적 성지로 가꿀 것을 다짐하고자 한다.
한걸음 나아가 아직도 수십위의 독립유공자 유해가 해외 각국에 버림받은 채로 있다는 가슴 아픈 현실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보훈처 당국에 의하면 아직도 모셔오지 못한 독립유공자 유해는 87위로,중국에 있는 양기탁선생 등 75위가 첫손 꼽힌다. 이밖에 미국에 서재필선생 등 3위,러시아에 김공집선생 등 8위,일본에 강상호선생이 있다. 이 가운데 66위는 어디에 있는지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아직도 모셔오지 못한 선열들은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한시 바삐 모셔오기를 기대하고 싶다. 또 확인된 선열의 묘역은 해외에 나가는 한국인이 반드시 참배하는 경유지가 되도록 계몽하고,자세한 여행정보를 알리는 조직적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 임정요인 다섯분을 국민적 의례로 맞이함으로써 우리의 오늘을 다시 보는 경건한 의례가 되기를 기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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