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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가십시오/고 장강재회장 영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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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가십시오/고 장강재회장 영결사

입력
1993.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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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재회장께 아룁니다.『안녕히 가십시오』… 때아닌 이 한마디를 위해 여기 한국일보사 사원들과 사우들과 여러 친지들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이 너무 이른 작별의 인사를 나직히 드립니다. 장 회장께 들리지 않아도 괜찮을 목소리로 드립니다. 지금 어째서 우리가 장 회장과 작별해야 할 시간입니까.

참으로 아깝습니다.

이제 겨우 망오십,49세라는 나이가 너무 아깝습니다. 지금까지 한 일보다 더 많은 일을 남겨놓고 떠나십니다. 지금부터인데 가십니다.

참으로 분합니다.

뿌리치고 떠나는 장 회장의 손목을 놓친 우리가 분합니다. 우리 사원들이 모두 힘을 조금씩이라도 더 보태 드렸더라면 우리는 회장을 붙잡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29세의 청청한 나이로 한국일보사라는 무거운 짐을 맡았을 때,그것은 큰 용기였고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당당했습니다. 자신에 차 있었습니다. 신문에 대한 신념이 뚜렷했습니다. 신문 경영의 비전이 분명했습니다. 한국일보의 새로운 희망이었습니다. 항상 젊은 신문 한국일보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후로 만 20년입니다. 그 사이 한국일보사의 사세는 눈부시게 신장했습니다. 사장 취임당시 1천명 미만이던 사원은 2배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하루 8면이던 한국일보가 조석간 합쳐서 하루 48면으로 증면된채 발행부수가 5배 이상이 되었습니다. 자매지들도 같은 성장입니다. 장기영 창간발행인의 창업은 19년동안이었습니다.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고도 합니다. 이제 막 창업의 햇수를 수성이 앞질렀습니다. 장 회장께서는 수성에 대성했습니다. 그리고 수성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실로 재창업이었습니다.

장 회장께서는 우리 언론계를 선도했습니다. 우리 언론사는 길이 기억할 것입니다.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글씨로 기록될 것입니다. 「휴일없는 신문」을 맨 먼저 만들며 장 회장 스스로 휴일이 없었습니다. 「아침 저녁이 없는 신문」을 시작하며 장 회장 스스로 밤낮이 없었습니다. 전국 동시뉴스시대의 막을 열면서 전국의 독자있는 곳을 다 다녔습니다.

장 회장께서는 자신을 너무 아끼지 않았습니다. 신문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역사적 소명을 멍에처럼 지고 고투했습니다. 결국 그 과로가 우리의 회장을 잃게 했습니다.

장 회장께서는 회장이기전에 가장 모범적인 사원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신문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 어떤 사원보다 먼저 신문사에 출동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7시반 회장실에 나와 계셨습니다. 신문사의 사각시간인 이른 아침을 혼자 지키셨습니다.

한국일보 사원으로서 우리는 부끄럽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장 회장만큼 부지런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장 회장의 과감한 개척정신을 같은 걸음걸이로 따르지 못했습니다. 장 회장께서는 고독했을 것입니다. 이른 아침 회장실에 혼자 나와 앉았을 때처럼 외로웠을 것입니다. 이 자책에 우리는 가슴 아픕니다.

지난 6월30일의 마지막 이사회를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투병중의 장 회장께서 휠체어를 타고 나와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불과 한달 남짓 전입니다. 이 자리에서 장 회장께서는 『정직하고 정확한 신문을 만들라』고 되풀이 말씀하셨습니다. 『신문 보기가 겁난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힘없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처지를 반영하라』고도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장 회장의 평소 신문에 대한 철학이자 결국 마지막 남긴 말이 되었습니다. 어느 땐들 안그렇겠습니까마는 언론의 자유가 확보되고 언론의 자율이 절실한 지금처럼 「정직하고 정확한 신문」이 요청되는 때는 없습니다. 이 한마디는 우리 사주들에게뿐 아니라 전 언론인에게 주는 한 정직한 신문인의 유언일 것입니다.

이 이사회 자리를 떠나면서 장 회장께서는 우리 사주들에게 『단결하라,단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장을 잃은 이 허전한 가슴들을 회장의 유지말고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단결하겠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단결할 것입니다. 정직하고 정확한 신문을 만들겠습니다. 반드시 만들 것입니다.

내년이면 동란후의 한국 현대사와 함께 발전해온 한국일보가 창간 40주년을 맞습니다. 지난 6월9일 창간 39주년 기념사에서 장 회장께서는 『창간 40주년에는 기어이 정상을 정복하자』고 강조했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1년을 남긴 발진의 신호였습니다. 그러고는 회장께서는 살짝 비키듯이 떠났습니다.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전사원이 달리겠습니다. 그래서 1977년 장 회장께서 회장으로 취임하자 한국일보 파견의 한국원정대가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처음 정복하여 그 정상에 한국일보 사기를 꽂았듯이,하늘 아래 첫 신문으로 가장 높이 한국일보의 깃발을 세우겠습니다.

정도밖에 모르던 회장,샛길을 모르던 회장,거짓말을 모르던 회장께서 단 한번 마지막 큰 거짓말을 하셨습니다. 『금년 가을까지는 반드시 병상에서 일어나 정상업무에 복귀하겠다』고 우리에게 약속했습니다. 왜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지금 거기 그 모습으로 계십니까.

우리는 지금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슬퍼할 겨를이 없습니다. 회장의 유지를 다 이룬 다음,그때 그 위대한 성과를 회장께 보고드리면서 우리는 슬퍼할 것입니다.

우리는 당황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회장께서는 지금 부재중일 뿐입니다.

지금 회장실문이 열려 있듯이 늘 우리곁에 계십니다. 노크하면 언제든지 들어오라는 목소리를 우리는 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장 회장,이제 모든 심로를 거두고 심안하십시오. 한국일보는 영원히 이어갈 것입니다. 한국일보가 영생하는 한 장 회장께서도 영생할 것입니다.

회장,우리 회장,편히 쉬십시오.

1993년 8월4일

고 장강재회장 한국일보사장

집행위원장 김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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