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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많고 자신에 엄격했던 「큰 그릇」/고 장강재 본사회장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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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많고 자신에 엄격했던 「큰 그릇」/고 장강재 본사회장의 일생

입력
1993.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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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 인사와 두터운 교분유지/매사 손해 감수하며 긍정접근/힘없고 억울한자 편에 서서/정직한 신문제작에 온정열지난 6월9일 상오 한국일보사 12층 강당에서는 한국일보 창간 39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단상의 한 가운데 회장자리는 비어있었다.

4월12일부터 입원치료중인 장강재회장의 쾌유를 빌며 한국일보 및 자매지의 사원들이 숙연한 마음으로 기념식을 진행하고 있을때 휠체어에 앉은 장 회장이 홀연히 입장했다.

사원들은 저도 모르게 모두 일어섰다. 감내하기 힘든 중병에 맞서 싸우느라 여위고 초췌한 모습이면서도 장 회장은 미소로 사원들의 박수에 응답했다.

장 회장은 병세가 호전될 때마다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회사에 출근했다.

「후회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주 회고했던 장 회장은 병고와의 어려운 싸움에서 꿋꿋하고 의연함을 보여 가족과 사원들을 감동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재기를 기원했고 본인도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장 회장은 끝내 일어서지 못해 사원들은 물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있다.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아홉. 이 짧은 생을 사는동안 장 회장은 누구보다 더 건강에 자신이 있었던 사람이다.

사원들에게는 건강진단을 권유하고 몸조심을 당부하면서도 자신은 건강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고 일속에서 피로를 풀며 건강을 찾아가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근면성 정직성 자신에 대한 엄격함 인정 등의 덕목이 발견된다. 근면성의 경우 장 회장은 한국일보사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상오 7시40분이면 어김없이 출근했고 골프도 시간이 많이 든다고 치지않았다. 전시회를 보러 다니거나 자녀들과 함께 농장에 찾아가 호박을 따고 고추 토마토를 기르는 정도가 취미였을뿐 일요일에도 시간을 무척 아껴서 썼다.

그는 정직을 늘 강조하고 편법이 아닌 정도를 밟으려 했으며 원칙을 중시했다. 이미 88년 11월 국회 언론청문회때 많은 사람들이 장 회장의 그런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두주불사의 큰 술이었던 그는 술자리에서도 잔을 속이거나 사양하지 않는 「정직한 술꾼」이었다. 아랫사람이 누군가를 흠잡거나 흉볼경우 오히려 그를 꾸짖으며 정직과 선의로 인간을 대할 것을 충고하곤 했다.

따라서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할 수밖에 없었다. 투병중인 병원에서도 문병객이 올때면 면도를 새로하고 옷을 갖춰입은뒤 병상에 눕지않고 의자에 단정하게 앉아서 맞았다. 선친인 백상 장기영 한국일보 창간발행인의 「좋은 차 타지 말라」 「집을 늘리지 말라」는 가르침대로 차를 한번 사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썼고 집도 빈소에 온 문상객들이 『너무 가꾸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이다.

77년 선친의 타계이후 장 회장은 장형부모(맏형은 부모와 같다)의 몸가짐으로 한국일보 기업과 가족들을 이끌어왔다. 그의 앞에서는 동생들이 담배도 피우지 못할만큼 엄격했다.

그러나 장 회장은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손해를 보거나 오해받는 일이 많았고 친구들의 어려운 일이라면 자신의 일을 제쳐두고 도맡아 도와주었다. 사원들이 부친상 모친상을 당하면 산꼭대기 달동네,변두리의 후미진 병원 영안실을 가리지 않고 꼬박꼬박 찾아가 가장 오래 앉아있는 문상객이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사회 각계에 친구가 많았다. 한번 사귄 사람과는 끝까지 두텁고 따뜻한 교분이 유지됐다.

선친이 한국은행 부총재가 됐던 때와 똑같은 나이인 33세에 한국일보 경영을 맡게 된 장 회장은 이런 장점과 덕목으로 한국일보를 발전시켰고 전국 동시인쇄,월요일자 신문발행,조·석간제 부활 등을 통해 「휴일없는 신문」을 이룩하며 한국신문산업을 선도해왔다.

선친타계후 경영주로서의 장 회장이 첫번째 성취해낸 일은 77년 한국에베레스트 원정대가 최초로 등정에 성공한 것이다. 선친이 생전에 추진했던 이 일을 위해 그는 에베레스트 산기슭까지 찾아가 세계의 정상에 올라선 한국인의 쾌거를 격려했다. 80년의 언론통폐합으로 폐간됐던 서울경제신문을 8년만인 88년 8월1일 복간했던 장 회장은 그뒤 통폐합의 부당성을 역사에 남긴다는 의미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역사의식을 보여주었다.

장 회장은 지난 6월30일 휠체어에 앉은채 출근,이사회를 주재하면서 언론의 정직성을 다시 강조하고 힘없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처지를 적극 반영할 것을 당부하면서 한국일보의 비전까지 제시했다.

중환속에서도 이틀간 식음을 마다하며 메모했던 이 마지막 당부는 결국 사원들에게 남긴 유언이 됐다.

장강재회장은 신문과 함께 자고 깬 언론인이었다.<임철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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