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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마을(장명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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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마을(장명수칼럼)

입력
1993.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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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들을 얘기할 때마다 우리는 자원봉사의 전통이 오래인 서양의 예를 들곤 한다. 나는 특히 미국의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깊은 인상을 갖고 있다. 몇해전 미국의 유료양로원을 취재하면서 나는 지방도시의 자원봉사자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어느날 양로원까지 자동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호텔에 나타난 사람은 소아마비가 매우 심한 할아버지였다. 그는 나를 위해 왕복 네시간동안 기꺼이 차를 몰았다.양로원 안에도 노인봉사자들이 있었다. 의사·간호원·사서·교사로 일하다가 정년퇴직했다는 남녀 노인들이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치매에 걸린 노인들을 친철하게 상대해주고,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아주고,책과 레코드를 관리하고,간식을 나눠주는 일 등을 모두 봉사자들이 하고 있었다. 한 노인은 『나도 멀지않아 이곳에 올 것이므로 건강할 때 봉사를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떠날 때 『미국을 움직이는 큰힘중의 하나가 자원봉사자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하자 나를 안내하던 한 주부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개척자들이 세운 나라다. 이 땅에 건너온 개척자들이 서로 돕지 않았다면 자연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이 이 나라의 자원봉사 정신의 뿌리다』라고 말했다.

지난 26일 추락한 아시아나여객기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뛰었던 마천마을(전남 해안군 화원면 마산리) 주민들의 이야기는 농경사회에서 천재지변과 싸우며 서로 돕던 우리의 뿌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대로에서 불량배들에게 폭행을 당해도 누구 한사람 도와주는 이 없는 삭막한 세태를 한탄하던 우리는 마천마을에 고스란히 살아있는 우리들 정신의 원형을 반갑게 확인하고 있다.

마천마을의 남녀노소 2백여명은 이장이 마을 앰프로 전하는 사고소식을 듣자 비행기가 추락한 운거산으로 달려갔다. 몰아치는 비바람속에서 어른들이 낫과 삽으로 가시덤불을 쳐내며 길을 만드는 동안 다림쥐처럼 날쌘 산동네 꼬마들은 어느새 사고현장으로 올라가 부상당한 어린이들을 구해내고 있었다. 남자들은 입었던 바지를 찢어 만든 임시들것으로 부상자를 날랐고,여자들은 구조대와 취재진이 몰려오자 집으로 달려가 큰솥에 밥을 지었다.

46가구 3백여 주민이 농사를 지으며 조용하게 살고 있는 이 산골마을은 갑자기 유명해졌고,전국민에게 위로를 주었다. 세상이 날로 험악해진다고 한탄하지만,우리의 고향에는 이웃을 구하기 위해 내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마천마을은 따뜻한 불씨다. 이런 불씨가 남아있는한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았던 우리 삶의 원형을 되살릴 수 있다. 1백10명의 사상자를 낸 어이없는 이번 참사에서 우리는 마천마을이라는 희망을 건졌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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