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38년동안 주름잡아왔던 자민당 지배체제가 끝나고 비자민 연립정부가 들어서는 역사적 대전환이 일본 열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 정치가 55년이후 자민당과 사회당의 보혁 양극체제에서 자민당과 신보수당의 다당체제로 바뀌는 것이다. 일본정치의 대지각 변동이다.자민당이 「7·18총선」에서 비록 과반수 의석획득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사회당과 신생당 등 7개 군소정당에 의한 연립정권의 탄생을 저지하지 못하기에 이른 것은 그만큼 자민당 정권에 대한 일본국민의 염증이 강했다는 것을 반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연립정권 수립에 열쇠를 쥐고 있던 일본신당과 신당 사키가케(선구)가 자민당과의 연정을 거부하고 비자민 연정에 가담한 것은 자민당의 장기 지배체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여론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일본 자민당의 장기집권은 고도성장으로 전후 일본을 잿더미 위에서 경제대국으로 부흥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그에 따른 구조적 부정부패와 금권·파벌정치에서 오는 국민의 염증은 극에 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6년 록히드사건으로 다나카(전중) 전 총리가 구속됐는가 하면,88년 다케시타(죽하) 정권에서는 리쿠르트사건과 사가와규빈(좌천급편) 사건이 터져 다케시타 총리가 도중하차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자민당이 야당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이렇듯 끊임없는 자민당 주요 당직자의 부패추문과 오직사건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외면한데 따른 일본 국민의 준엄한 심판의 결과라는 점에서 우리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교훈이다.
제1야당인 사회당을 비롯하여 신생,공명,일본신당 등 7개 정당은 외교·안보 등 대외정책에 대해 『과거 자민당정권이 추진했던 정책을 계승한다』거나 『과거의 침략전쟁에 대해 인접국가에 사죄한다』는 등의 방침을 국회에서 결의키로 했다고 한다. 이같은 대외정책의 불변 천명은 일차적인 개혁의 방향을 국내문제에 두겠다는 뜻이며,대한반도 정책도 급격한 변화없이 한일 기본조약의 인정과 평화통일을 위한 협력을 다짐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신보수연정의 기본정강이라고 할 「경제대국에 걸맞는 정치대국화」는 전후 정치의 청산과 함께 평화헌법의 개정으로까지 이어지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염려된다. 새 내각진용이 어떻게 짜여지든간에 정책결정에 가장 큰 영향력은 자민당의 구 하타(우전)파를 모체로 한 신생당이 갖게 될 것인데,이 신생당의 대표간사인 오자와(소택)가 추구하는 「일본대국론」의 골자가 전쟁포기와 함께 군비와 교전권을 부인한 평화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데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연립정권의 새로운 리더로 선택된 호소카와(세천)가 이끌어온 일본신당도 평화헌법 개정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신보수정당 연합정권의 출현이 자칫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자극할 우려가 없지 않다. 우리의 대응책이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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