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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 재확인 되다(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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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 재확인 되다(사설)

입력
1993.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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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리를 곰곰 따져보면 당연한 일인데도 모두가 경천동지랄만큼 놀라워하는 판결이 나왔다. 5공때 당시 재계 랭킹 7위였던 국제그룹의 해제조치가 위헌이라는 헌재결정이 주는 충격과 의미는 너무나 엄청나다 하겠다.이번 결정은 우선 우리 헌정사에서 힘을 앞세운 대통령의 권력남용과 법적근거없는 부당한 통치행위에 대해 처음으로 성역을 타파,불법을 인정했다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민주법치국가라면서도 과거 대통령이면 언제나 통치권행사라는 핑계로 초법적 특권을 누려왔다. 오죽하면 법전에도 없는 괘씸죄가 가장 큰 중죄라는 불문율이 통하는 세월을 우리는 말도 못하고 살아왔을 것인가. 독재와 전제정치의 상징이었던 그런 괘씸죄 풍토가 비로소 딱 부러지게 법의 제재를 받을 수 있음이 실증된 것이야말로 말로만 강조되어온 법치주의의 진정한 출발점이자 값진 수범이라할만 하다.

헌재는 이번 결정문에서 위헌의 근거로 헌법 제119조 1항과 제126조를 꼽았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 및 창의존중과 사기업에 대한 통제·관리불가 및 경영권 불간섭원칙을 밝힌 그 헌법조문의 적용은 법치주의와 함께 민주주의의 두가지 초석인 자율경쟁과 창의에 바탕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칙을 더욱 뚜렷이하는 선언적 의미도 담고 있는 것이다.

통치권 성역 불인정과 법치 및 시장경제원칙 재확인의 의미를 떠나서도 이번 결정은 왜곡된 사회정의란 언젠가는 바로잡힐 수 밖에 없다는 도덕적 당위성을 우리 사회에 표본적으로 심어준 효과도 엄청나다 하겠다.

지난 85년의 국제그룹 해체를 둘러싸고 당시에도 얼마나 말이 많았던가. 재계는 물론이고 시중에서도 법과 정의야 있든 말든 매사가 「대통령 마음대로」라는 자조섞인 울분이 팽배했었다. 또한 부실기업 정리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그 기업이나 그룹을 지원해서 살려주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조치를 마다하지 않았음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하여 평소 정치자금 제공 등에서 곱게 보인 여타 정경유착 그룹과 기업에 정리기업들을 특혜삼아 나눠준 무소불위 권력의 행태가 바로 얼마전까지의 우리 현실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불법·불공정·전제적이었던 국제그룹 해체의 실장은 6공 정부가 서면서 5공 청문회를 통해 이미 알려진바 있었다.

그후 89년 이번 결정을 불러낸 헌법소원이 국제그룹 총수였던 양정모씨에게 의해 제기됐고,주식반환 및 경영권 반환청구소송이 잇따랐으며,그뒤에도 상당한 시간의 경과와 6공을 거쳐 문민정권이 출범하는 과정이 있었음을 새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긴시간과 과정이 어째서 허송되고 이토록 분명한 위헌과 불법이 왜 미뤄지고 바로잡히지 못했던 것인지 헌재 등 사법부와 정치권에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과거 권력눈치보기와 보신에 급급했던 우리 사회 각계의 면모가 새삼 한탄스러워진다 하겠다.

이번의 충격적 결정으로 부수적 소송사태는 물론이고 재계에 엄청난 지각변동마저 초래될게 내다 보인다. 하지만 그런 혼란도 이번 결정이 지닌 막중한 시대적 의미를 꿰뚫으면 무난히 수습될 것으로 믿고 싶다. 시장원리의 민주법치국가에서 법과 사회정의를 기준삼아 해결 안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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