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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입시 부활하자/정운찬(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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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입시 부활하자/정운찬(한국논단)

입력
1993.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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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경제(학) 이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앞날을 걱정하는 경제학도로서 한국교육의 현실을 지켜보며 침묵만 지킬 수는 없어 교육문제에 대해 한마디하려 한다.교육은 자기계발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차원에서 볼때 교육은 창의적 인간을 길러내며 또한 창의적 인간은 클린턴 행정부의 브레인인 R 라이치가 말했듯이 생산성 향상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제고시키므로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가 교육투자,즉 인적자본에의 투자에 관심을 갖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적으로는 몰라도 공적 교육투자가 GNP 대비나 국가예산대비 등 어느모로 보나 보잘 것 없다. 뿐만 아니라 같은돈을 써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한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교육이 교육자에게 맡겨지지 않고 정부관리 손안에 있는데 있다. 관리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면 경제가 잘 안되듯이 교육도 관리가 지휘하면 망할 수 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가장 심각한 교육의 문제는 수재와 범용한 학생이 똑같이 취급받는데 있다. 교육은 우수함을 추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교육은 쉽게만 가르치려하고 평준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다.

평준화는 20여년전 자라나는 새싹들을 입시지옥으로부터 해방시키자는 명목으로 먼저 중학교 입시를 없애고,3년후 고등학교 입시까지 없앤후 생겨났다.

그러나 오늘날 입시지옥은 과거보다 훨씬 긴터널로 변하였고 그 강도 또한 훨씬 높아졌다. 대학 졸업장이 능력과 인격을 재는 척도가 되고,모든 부모가 법관 의사 자녀 두기를 원하는 사회구조속에서 입시지옥이 사라지겠는가.

한국의 표준적 어린이가 대학,특히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자면 유치원부터 14년동안 입시준비를 해야 한다. 이들은 빈부를 가릴 것 없이 그리고 능력도 따질 것 없이 태권도·수영·미술·피아노·붓글씨·속셈·영어… 등을 마구잡이로 배운다. 때로는 부모의 권유로,때로는 친구를 따라 목적의식없이 학원에 간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배우는 것이 없다. 꼭 배우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남들도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과목들은 모두 중·고등학교에서 내신성적을 올리기 위한 예비과정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치원과 국민학교의 과정이 끝나면 부모가 거주하는 학군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강제로 배정받아 10여과목을 배운다. 내신을 의식하며 모든 과목을 다하자니 어느 것 하난들 잘하는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우등생과 지진아가 같은 학급에서 배우자니 애로가 많다. 우등생 중심으로 하면 열등생이 못따라 오고 열등생 중심으로 하면 우등생이 흥미를 잃는다. 결국 학교는 교육을 포기하고 학부모들은 과외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두가지 문제가 생긴다. 하나는 평준화된 학급에서 창의적 인간을 길러낸다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는 문제다. 평준화는 수재를 바보로 만들뿐이다. 또 하나는 중·고교 과정에서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가정의 자녀만이 과외를 할 수 있다는 문제이다. 오늘날 유수대학의 인기학과생 대부분의 부잣집 자녀이거나 극성스런 부모를 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나는 중·고교 입시를 부활할 것을 제안한다. 어떤 학생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중·고교중의 하나에 들어가기만 하면 전국적으로 유명한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때 입시지옥은 완화될 것이다. 또한 이런 학생들이 한편으로는 비슷한 또래들끼리 경쟁하며 자신을 계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유를 갖고 특별활동을 마음껏하며 호연지기를 기른다면 창의성이 개발될 여지가 많아질 것이다.

한마디로 중·고교 입시부활은 긴장과 초조속에서 14년을 입시준비로 고생하는 학생들 가운데 우수한 이들을 미리 길러 대학입시 걱정으로부터 해방시키자는 것이다. 창의적인 생각은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길러줘야 하며 또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에나 생기기 때문이다. B 러셀도 말하지 않았던가. 바쁜 사람의 머리로부터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우리의 선현들은 교육을 백년지대계라 했다. 옳은 말이다. 오늘의 훌륭한 교육은 백년후의 한국을 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교육의 효과는 생각보다는 훨씬 단기간에 나타날 수도 있다. 교육투자를 더 늘리고 교육을 교육자에게 맡기는 동시에 교육제도를 빨리 고쳐 창의성 발휘→생산성 향상→국제경쟁력 제고를 기대해보자. 그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은 중·고교 입시부활이다.<서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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