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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애는 살아있다(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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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애는 살아있다(사설)

입력
1993.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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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기가 추락한 참극의 현장엔 기적과 인간애가 피어났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네 인간애만은 추락하지 않았다. 기체가 동강난 산중턱에서 40여명의 생존자가 있음은 기적이다. 그들을 다시 살려낸 것은 산골마을의 야생화같은 순박한 인심이었다. 아울러 혼신의 구조노력을 보인 군·경의 노고를 어찌 잊겠는가.먼저 다친 몸을 이끌고 마을로 내려가 구원을 요청한 승객의 의지가 장하기만 하다. 생사가 엇갈린 전쟁터와 같은 현장을 본 그의 판단은 기민했다. 홀로는 역부족임을 금방 깨달았다. 그후 안간힘을 다해 산길을 1시간 이상 헤메다가 농민을 만나 참극이 처음 알려졌다. 그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꾸물거렸으면 희생은 더 늘고 구조작업이 더 늦어졌을 것이다.

지금 농촌은 일손이 달리는 농번기다. 그러나 50여가구의 농민들은 한몸처럼 산등성이로 달려갔다. 길도 발자취도 없는 험한 산속이지만 낫과 삽을 들고 헤쳐 나갔다. 군·경 구조대가 올 때까지 농민들은 부상자를 업고 부축해서 병원으로 옮겼다.

눈물겨운 참사지만 눈물을 흘릴 겨를도 없었으리라. 생자와 사자가 함께 피투성이가 되어 정신없이 구조작업을 반복하여 인간애의 기적을 탄생시켰다. 여기에 기동력을 갖춘 군·경 구조대가 합세했다. 이들도 끼니마저 잊은채 칠야의 산을 불빛으로 밝히며 끝내 현장을 지키고 수습을 마무리한 것이다.

아시아나 여객기의 추락참사는 형언을 못하게 비통하지만,그 자리에서 발휘한 인간애의 감동은 우리에게 무한한 위안을 남기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본디의 모습이 아닌가. 넉넉한 인심,온 마을이 한덩어리가 되는 협동심,그리고 남의 고통을 내 아픔으로 아는 후덕함이 바로 우리네 마음의 고향이기도 한 것이다. 예부터 우리는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서로 돕고 살아왔다.

여객기 참사의 현장에서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은듯한 보람을 한껏 누리게 되었다. 이만하면 집단이기주의니 배타주의니 무관심이 발붙일 여지가 없음을 깊이 깨닫는다. 굴절된 인심은 얼마든지 바로 펼 수 있다는 확증을 얻었다. 도시인의 인심도 이제 마음의 고향을 다시 찾을 기회를 잡았다. 이것이 해남의 산골마을의 인간애에 보답하는 길임을 굳게 믿는다. 상부상조의 정신을 깊이 새겨야 한다.

끔찍한 죽음을 애도하면서 삶의 보람도 느끼는 착잡한 감회에 사로잡힌다. 인간애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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