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출범후 유별나게 보궐선거가 많다. 4월과 6월에 각각 세곳을 치렀고 8월에 두지역이 예정돼 있다. 정치판의 분위기로 미뤄볼 때 가을쯤에 또 한차례의 보궐선거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올해는 「보궐선거의 해」로 기록될 것 같다.8곳의 보궐선거중 네지역(명주 양양,철원 화천,예천,대구 동을)이 재산공개 파문에서 비롯되었다. 정치권을 강타한 재산공개의 위력이 새삼 실감난다.
재산공개의 취지는 부정부패 구조의 척결에 있었고 정치권의 경우에는 깨끗한 정치풍토의 실현이었다. 그리고 깨끗한 정치풍토의 실현은 곧바로 돈 안드는 공명정대한 선거로 이어졌다.
새정부의 보궐선거에서 「새로운 선거모델」이 시도되는 것은 당연하다.
새 선거모델은 크게 두가지를 의미했다. 첫째 돈을 안쓰는 것이요,둘째는 게임의 룰을 지키는 것이다. 집권자는 기회있을 때마다 선거풍토 개혁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고 여야는 지는 한이 있더라도 새 시대에 걸맞는 선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보궐선거만 했다하면 각 정당이 사생결단의 혈투를 벌이고 불법·타락상이 판을 쳤던 과거의 모습이 상당히 시정돼가는듯 했다. 최소한 4월에 실시된 부산 동래와 사하 그리고 광명에서는 그랬다. 그러나 6월은 좀 경우가 달랐다. 대표적인 예가 명주 양양이었다.
민자당은 차기 대표설이 나도는 중진 원로를 공천한데 당력을 집중시켰고 민주당은 대표와 당 중진들이 상주하면서 대리전을 치렀다. 선거과열을 막기 위해 중앙당 차원의 개입을 자제하자는 약속이 실종되었음은 물론이다. 없어졌던가 싶던 상호비방과 고발전이 되살아났고 의원들은 동책과 면책을 맡아 표를 쫓아다녔다. 예천에서도 유력한 무소속 후보가 민자당의 압력으로 후보를 사퇴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6월 보궐선거 세군데는 모두가 재산공개로 인한 물의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가장 개혁적으로 치러져야 할 선거였다.
8월12일로 확정된 대구 동을과 춘천 보궐선거의 조짐이 벌써부터 심상치 않다. 여야는 선거날짜 택일에서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급기야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선거날짜를 정해버리는 보기 흉한 모습이 재현되었다.
대구와 춘천 현지에서 들려오는 얘기들은 한결같이 우려의 목소리들이다. 중앙당은 중앙당대로 후끈 달아있다. 민자당은 명주 양양의 악몽을 되새기며 잘못될 경우 개혁추진에 중대한 차질이 올 수 있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개혁정국에 야당의 목소리를 싣기 위해서는 두군데중 최소한 한군데를 이겨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일 태세이다.
8월선거에서 지면 여야 모두 당의 간판이라도 내버리겠다는 모습들이다. 그러나 선거는 항상 「제로 섬 게임」이다.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구별될 수 밖에 없다.
여야가 보궐선거의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은 스스로가 빠질 수 밖에 없는 함정을 파는거나 진배없다. 의미가 확대된 보궐선거는 필승을 요구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선거는 과열되기 십상이다. 과열된 선거가 타락으로 흐를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멀리 갈 것 없이 지난 13대에 실시되었던 보궐선거만 봐도 그렇다. 89년 4월의 동해 보궐선거는 여소야대 아래서의 첫 선거였다. 민정 평민 민주 공화 등 4당은 인구 10만이 채 못되는 동해안의 조그만 도시에서 체면을 건 대회전을 벌였다. 결과는 후보매수사건이 터져 제2야당의 사무총장이 구속되고 후보 전원이 불법선거 혐의로 선관위에 고발되었다.
같은해 8월의 영등포을 보궐선거도 마찬가지였다. 공안정국속에서 치러진 이 선거에서 여야는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당시 여당인 민정당은 이 선거를 「나라의 갈 길을 가름하는 시금석」이라고 부풀렸고 제1야당인 평민당은 승리를 거둠으로써 「공안정국의 늪」에서 벗어나려했다.
결과는 합동유세중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했고 후보자 전원이 또다시 불법선거 혐의로 고발되었다.
90년 4월의 대구 서갑과 진천 음성 보궐선거의 백미는 대구 서갑에 출마했던 정호용 무소속 후보의 후보사퇴였다. 정 후보는 여권의 끈질긴 후보사퇴 종용에 결국은 굴복하고 말았다. 당선이 가장 유력시됐던 후보가 제발로 후보를 사퇴해버리는 세계선거사상 드문 기록이 세워진 것이다.
90년 11월의 영광 함평 보궐선거에서는 「지역패권주의」가 또 다시 선거이슈가 돼버렸다.
과거의 보궐선거는 선거분위기의 혼탁과 타락이 하방 경직성을 지니고 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선거분위기가 한번 잘못되기 시작하면 좀체로 바로잡기 어렵다는 얘기이다.
개혁과 사정 정국의 와중에서 그나마 자리잡혀 가던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풍토는 한번 비뚤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타락상으로 치달을게 뻔하다.
보궐선거는 2백37개의 지역구중에서 한두곳의 의원 유고상황을 해소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되찾아야 한다. 의원 한두명을 뽑는데 온나라가 떠들썩할 필요는 없다.
정당이 정치판이 최대행사인 선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게임의 룰을 지키는 정정당당한 것이라야 한다. 게임의 룰은 고사하고 스스로 다짐한 약속조차 지키지 않는다면 문제가 보통 심각한게 아니다.
여야는 우선 보궐선거에서 중앙당 개입을 자제키로 한 약속부터 지켜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임이 분명하지만 게임의 룰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의 무덤」이 될 수도 있다.
8월 보궐선거를 유심히 지켜보자.<편집국장대리>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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