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정치판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여야 정치인들의 교유가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공석에서는 여야,사석에서는 동지』라는 비유가 나올 정도이다. 이같은 현상은 정치권이 치열한 정면대치 양상을 벗어나고 있음을 말해주면서 정치인의 세대교체가 본궤도에 들어섰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이런 신풍속도의 주역들은 6·3세대,민청학련 세대 그리고 민추협 멤버 등으로 유신과 5공시절 등 민주화투쟁에서 한배를 탔던 인사들이다. 3당 합당 때문에 여야로 갈렸지만,정파를 초월한 동질감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친목회건 사적 모임이건 건수를 만들어 자주 만난다. 깊은 정보도 교환하고 진지한 토론도 벌인다. 상대방의 경조사를 자기 일처럼 챙긴다. 때문에 끈끈한 연대감이 형성돼있으며,그 연대감은 언제든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뭉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잉태해가고 있다.
여야 정치인의 교유는 정치순항기에는 정책이나 의정활동에서의 기여로 나타난다. 하지만 정치가 격랑에 휩싸일 경우에는 중요한 정치적 변수로 작용할 소지가 크기 때문에 단순한 관심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6일 최형우 전 민자당 총장이 주최한 민추협 국장단 출신모임을 보자. 이 모임에서는 희미하지만 정치적 변수의 맹아가 엿보였다는게 참석자들의 얘기이다. 이 모임엔 무려 60여명의 여야 정치인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김덕룡 정무1장관,박태권 문화체육부차관,민주당의 박광태 이규택 김장곤의원 등 상당수 현역의원들이 한데 어울렸다.
한 참석자는 이날 분위기를 『동지애를 느낄 수 있는 화기애애함』이라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여야의 구분이 없어졌음은 물론이다.
13일 밤 충남대병원 영안실에 마련된 안양공씨(전 민주당 대구 중구 위원장)의 부친 상가도 좋은 예이다.
안씨가 야당생활을 오래한데다 원혜영의원(민주)이 안씨의 매제인 탓에 정치인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상가 한쪽엔 손학규(민자) 제정구 유인태의원(민주) 등이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모두가 안씨와 서울대 문리대 1∼2년 선후배 사이이고 민청학련 사건때 고초를 겪었다.
뒤이어 청와대의 김정남 교문수석이 이 자리에 합석했다. 여야가 뒤섞였지만 전혀 이질감이 없었고 오히려 친근감이 두드러졌다.
화제는 개혁정치로 이어졌고 즉석 토론이 전개됐다. 참석자들은 여야로 갈려있었지만 결론은 『YS 개혁이 바로 갈 수 있도록 돕고 비판하자』는 것이었다.
이와같은 교류를 가장 활발하게 갖는 그룹은 6·3세대다. 6·3세대는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을 굴욕외교라고 반대했던 학생운동 그룹으로 64년 6월3일 계엄령으로 무더기로 구속되면서 옥고를 치렀다. 그후에도 상당수 주역들은 박해의 표적이 됐기 때문에 6·3세대의 동지의식은 남다른데가 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들은 수시로 만난다.
민자당의 김 정무장관 서청원 박범진 이명박 박희부의원과 원외의 이종률 안성혁씨 등이 6·3세대이다. 또 청와대의 김 교문수석 김도현 평통사무차장 그리고 장외에서 개혁정치에 일조하고 있는 현승일 국민대 총장 신한련의 송철원 임무현씨 등도 이 그룹이다.
민주당의 한광옥 김덕규 이부영 이협 박석무 박정훈의원과 원외의 김경재 이원범씨 등도 6·3세대이며 김지하시인 김학준 전 청와대 공보수석 등도 이에 속한다.
지난 6월3일 6·3사태 29주년 기념식때 6·3세대는 거의 빠짐없이 참석,단합을 과시하기도 했다.
6·3세대끼리는 소속정당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김 정무장관이 민주당의 한광옥 이부영 최고위원이나 김덕규 사무총장과 잦은 접촉을 갖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6·3세대의 뒤를 잇는 민청학련 세대도 마찬가지다. 손학규 이철 제정구 유인태 이해찬 장영달의원 등은 서로간에는 물론 선배인 6·3세대와도 여야의 개념없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여야 정치인의 유대는 개혁정치가 계속되는 한 확대 재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유대의 종착역이 단순한 상호 북돋움에 그칠지 아니면 정치구조의 개혁에까지 영향을 줄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향후 정국에서 잠복성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큰 것만은 분명하다.<이영성기자>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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