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만에 처음/경기 불투명… 활성책 무용/올 상반기 7.3% 감소/신공단 분양 48.2%뿐/공장부지 환매도 속출투자가 너무 오랫동안 위축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중 설비투자가 7.3%나 감소(한은조사),이례적인 위축현상을 보인데 이어 하반기에도 신통한 회복세를 기대하기 어려워 연간으로 잘해야 0.3%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설비투자는 지난해에도 전년비 0.8% 감소하는 극심한 위축현상을 보였었다. 두해 연속해서 이처럼 투자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은 사상 최초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지난 80∼81년이후 12년만에 처음있는 일이다.
앞으로의 전망도 매우 불투명하다. 기업의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돼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투자좀 해달라』고 업계를 채근하고 있고 업계가 투자촉진 결의대회까지 열며 의욕적인 투자계획을 대외적으로 발표하고 있지만 각종 투자지표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업계의 투자심리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꽁꽁 얼어붙어 있다. 산업연구원(KIET)의 설비투자 실태조사가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정부의 신경제정책이 본격 시행되고 있는데도 설비투자를 연초계획(신정부 출범전)보다 줄이려고 하거나 투자를 망설이고 있는 기업이 전체의 44%에 달하고 있다.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기업은 겨우 5%에 불과하다.
투자위축의 심각성은 공단분양 실적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공단분양 실적이 극히 저조할 뿐만 아니라 이미 분양받은 공장부지를 되팔아 버리는 환매사태까지 속출하고 있다. 90년을 전후하여 분양이 시작된 대불(목포) 아산(충남) 시화(경기) 남동(인천) 등 4대 신설공단의 분양률이 지난 6월말 현재 48.2%에 불과하다. 특히 남동공단 시화공단에서는 어렵게 분양받은 공단부지를 되팔아버리는 환매사태가 일어나 올 상반기중 환매규모만도 각각 6만8천8백여평,10만1천여평에 이르고 있다.
공장부지 환매는 이미 세웠던 투자계획을 취소해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투자부진의 심각성을 상징해주는 현상이다.
정부는 투자활성화를 겨냥,연초부터 금리인하 통화공급 확대 세제·금융지원 등 강도 높은 경기활성화 대책들을 거의 다 동원했다.
지금도 경기활성화에 최우선의 목표를 두고 물가 등 더 중요할 수도 있는 다른 정책목표들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투자활성화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했는데도 투자는 여전히 불감반응이다.
경제활동의 핵심은 투자다. 투자가 안되면 생산능력의 확대가 불가능하다. 확대 재생산이 없으면 경제가 발전할 수 없고 성장도 정지될 수 밖에 없다. 생산기반이 허물어지고 성장잠재력이 고갈되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는 것이다. 투자부진이 우리 경제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이백만기자>이백만기자>
◎정부,실태파악 미흡… 대처안이
투자부진에 대한 정부의 현실진단과 처방은 너무 안이했다. 당국자들은 연초에 경기부양책을 준비할 때만해도 투자촉진의 가장 큰 장애물로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여야의 끝없는 전쟁 등 정치불안을 꼽았다. 정치가 안정되면 투자마인드가 살아날 것으로 판단했다.
새정부만 들어서면 다 괜찮아질거라는 식이었다. 여기에 「신경제」가 가세되면 경제회복이 곧 이루어질 것으로 낙관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정치가 건국후 가장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신경제」가 가동된지 이미 오래됐는데도 설비투자 활성화는 감감 무소식이다. 정부 당국자들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제와서는 『경제가 하루 아침에 좋아질 수 있느냐』며 좀더 두고보자는 말밖에 안한다.
정부는 애초 「업계민심」을 읽는데 실패했다. 각 기관들이 연초에 조사한 것을 보면 설비투자 문제는 그리 큰 걱정거리가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조사기관별 금년도 설비투자 증가율은 ▲경제기획원(3월) 9.4% ▲상공부(4월) 7.5% ▲산업은행(2월) 7.9% 등으로 대체로 양호했다.
KIET의 한 관계자는 『정부 당국이 업계의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채 이같은 형식적 조사결과를 과신,안이한채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S그룹의 고위관계자는 이와관련,『정치 사회적 격변기를 맞아 정부기관이 실시하는 조사에 가능한한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응답하려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신기루」를 보고 정책을 기획,추진했다는 지적인 셈이다.
설비투자는 미래의 생산능력을 결정해준다는 점에서 경제성장의 「엔진」 구실을 한다. 생산능력을 확충해놓지 않으면 전체적인 경제활성화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과거 3저현상과 같은 특수기회가 다시 찾아온다해도 「그림의 떡」이다.
김시담 한은 이사(조사담당)는 『설비투자는 잠재성장력을 높이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경제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사공일박사(전 재무장관)도 『우리 경제가 과거 3저현상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은 생산력이 충분히 뒷받침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강도 높은 투자촉진책이 연초부터 계속 시행되고 있지만 효과가 없다. 액셀러레이터(투자촉진액)을 아무리 밟아도 헛바퀴만 돌고 있는 상황이다. 엔진이 고장난 것이다. 한국은행이 이례적으로 설비투자 특별 실태조사에 착수했고 상공부도 공단분양 부진실태를 조사중이다. 뒤늦게 엔진고장의 원인분석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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