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의 직속으로 설치된 GAO(General Accounting Office·회계검사원)는 정부의 예산회계 검사와 직무감찰을 주임무로 하면서 예산의 불법유용·낭비·권력남용과 수뢰 등을 감시한다. 즉 공직사회의 비리와 부정을 캐는데는 귀신이요 도사다. GAO는 통상적인 감사활동에의 각 상임위와 의원들이 미심쩍고 의혹이 있다고 의뢰하는 사안을 낱낱이 조사하여 결과를 보고한다. 상임위와 의원은 이 자료를 갖고 행정 각부를 상대로 추궁하기 때문에 장차관 등이 나와 우리 국회서처럼 거짓답변 과장보고 식언 또는 얼버무리기란 어림도 없다. 오직 진실한 답변과 증언만이 허용되기 때문에 정부측은 의회와 GAO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GAO가 미 공직사회의 부정과 탈법을 막는 파수꾼으로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것은 비리척결에 어떤 예외나 성역도 인정하지 않는 점이다.
건국이래 우리나라 감사원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지극히 우울해진다. 초기 위당 정인보선생이 감찰위원장을 맡아,추상열일같은 자세로 공직사회를 감시하고 있을 때 딱 한번 국민의 기대를 모았다.
그후 감사원은 몇몇 책임자들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거의 「죽은기구」 「껍데기기구」로 일관해왔다. 국가 최고의 사정기구임에도 공직사회의 비리와 부정이 들끓어 국민들의 원성이 치솟아도 외면한채 통치권자의 심기와 눈치살피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면서도 일부 원장들은 정권의 체면용으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을 역설했고 특히 6공 들어와서는 「성역없는 감사」 「부정있는 곳에 감사원 있을 것」이라고 호언했으나 여전히 권력형 비리에는 고개를 돌려 국민 빈축만을 사왔던 것이다.
그런 감사원이 문민정부 출범이후 변신을 시도한 것은 놀라운 일임에 틀임없다. 지난 5개월간의 사정활동은 구태와 오명을 씻기 위한 몸부림이자 감사원이 제구실을 보여주는 한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엄정과 무성역」을 내세워던 감사원이 이른바 율곡사업 감사결과 발표에 있어서 권영해 국방장관의 동생이 무기중개상으로부터 자금을 받은 사실을 삭제하고 거액을 수뢰한 조남풍 전 사령관에 대한 조치 등이 국민의 의혹을 사고 있음은 유감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감사원은 물의가 일자 권 장관의 동생과 중개상간의 금전거래가 권 장관과 무관하고 수사자료의 통보사항을 발표한 전례가 없는데다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삭제했다고 해명했으나 설득력이 약하다. 율곡비리가 엄청난 국민의 혈세를 유용한 사고로 국민의 비상한 관심사인 만큼 조사결과를 낱낱이 밝히고 관련자에 대한 조치도 다른 관련자와 마땅히 형평을 기했어야 했다. 본래 감사원은 비리를 규명하는 기관이지 벌을 주는 사법기관이 아니잖는가. 감사원의 삭제조치 등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바로 이같은 실수때문에 국민들은 「감사원이 과거로 회귀하는 것 아닌가」 「역시 성역은 건재한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감사원으로서는 새자세로 열심히 일하고도 이같은 눈총을 받아 억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국민의 기대가 그만큼 막중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감사원은 이번의 시행착오를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도 구태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감사원이 해야할 일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따지고 보면 김영삼대통령이 치유를 목표로 하는 한국병도 바로 공직사회의 비리가 그 연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의척결과 방지는 감사원의 주임무인 것이다.
따라서 감사원이 과처럼 권력자의 눈치나 슬슬 살피고 사정기능이 무디어지고 나태한 무기력증이 재발할 경우 공직풍토는 흐려지고 나아가 한국병 치유는 요원하다 하겠다. 일부에서는 감사원이 잇달아 실수를 저지르고 실족하기를 기대할는지도 모른다. 최고 사정기관으로서의 권위를 위해서도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감사원이 5개월동안 국민의 열화같은 재촉과 기대속에 「질주형의 감사」를 펼쳤다면 하반기부터는 냉엄한 자세로 원칙과 상식에 입각한,조용하면서도 소리없는 엄격한 사정활동을 펼쳐 국민의 기대에 보답해야 할 것이다. 우선 국민들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관련된 「평화의 댐」과 차세대전투기 기종선정 시비에 대한 엄정한 감사를 고대하고 있다. 감사원이 흔들리면 한국병은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다. 감사원은 언제쯤 한국의 GAO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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