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의 은사를 방문하고 온 어떤 분이 이렇게 한탄하였다.『한평생 그렇게 당당하게 사시던 선생님의 노년이 어찌나 비참한지 마음이 아팠어요. 자녀들은 미국에 살고 있고 노부부가 가정부를 두고 사는데,가정부 역시 늙어 온집안이 누추하고,음식도 말이 아니었어요. 선생님은 기동을 잘못하시고 노망이 시작되신 것 같았는데,사모님 역시 쇠약하여 돌봐드리지 못하고,가정부가 어찌나 선생님을 마구 대하는지 민망해서 혼났어요』
그는 집이고 뭐고 다 처분해서 차라리 양로원으로 가고 싶다는 사모님의 부탁으로 유료양로원을 찾아봤는데,노부부가 어느 정도 공간을 차지하고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시설이 없다면서 『노인은 돈이 있어도 쓰기 힘든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고 말했다.
돈이 있는 노인들은 편안하게 살기 힘든 곳이 한국이라는 말은 맞다. 큰 부자가 아니더라도 살고 있는 집을 팔아서 꽤 큰돈을 마련할 수 있는 노인들은 많다. 그러나 그런 노인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땅한 시설이 없기 때문에 노인들은 무리하게 자녀에게 의탁하여 갈등을 겪거나,돌봐주는 이 없는 노년을 보내게 된다. 몸을 쓸 수 없는 노인,치매에 걸린 노인들은 그가 한평생 품위를 잃지 않는 생을 갈망했다 하더라도 결국 비참한 존재가 된다. 구박을 받기도 하고,유기되기도 하고,정성껏 모시고 싶으나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 자녀들을 고통스럽게 하여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이처럼 부당한 경우는 없다. 한평생 부모를 위해,자식을 위해 희생적으로 살아온 오늘의 노인세대는 어느날 갑자기 가족에게 노년을 의탁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됐다. 사회도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자녀가 부모를 모시는 미풍양속을 지키고,노인사회의 빈부격차가 드러나 위화감이 조성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같은 이유로 노인복지시설은 구호수준에 억눌려 있었다. 만일 청년세대나 중년세대가 이런 처지에 놓였다면 결코 그 부당함을 받아들이지 않고 벌써 개선책이 나왔을 것이다.
보사부가 22일 입법예고한 노인복지법 개정안은 노인정책의 큰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개정안은 무의무탁 노인과 저소득층 노인만이 노인정책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있다. 새 노인복지법안은 양로시설,요양시설,노인마을 등의 설치·운영에 기업과 단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가정에서도 각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재가 노인복지사업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경제적 능력이 있는 노인들,자녀가 모실 형편이 안되는 노인들,병든 노인들이 각자 원하는 수준의 시설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노인복지사업의 다양화는 우리가 복지사회로 가는 기틀을 닦는 작업이며,첫 훈련이기도 하다. 사회복지에 필요한 인력양성과 자원봉사자 활용도 좀더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새 노인복지법은 심신이 건강하든 건강하지 못하든간에 노년의 존엄성을 지켜줌으로써 인강성 회복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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