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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굴레에 방학 실종됐다(고교 교육을 살리자: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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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굴레에 방학 실종됐다(고교 교육을 살리자:22)

입력
1993.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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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마다 진학 경쟁 “반강제 보충수업”/여행·취미활동등 「자기개발」 엄두못내방학은 고교생들이 시간표에 꽉 매인 학교생활에서 벗아나 마음의 여유를 갖고 활용할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기간이다. 때문에 방학이 다가오면 저마다 가슴 부풀어 알찬 계획을 세워본다. 뒤진 학력을 보충하는 기회로 삼기도 하고 취미활동을 즐기려는 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대학진학 위주의 고교교육으로 교육현장에서 진정한 방학의 의미는 퇴색된지 오래다. 수험생은 말할 것도 없고 고교 저학년조차 입시 중압감때문에 방학이 즐겁지만은 않다. 대학진학률을 높이기에 급급한 학교측과 자녀진학에만 신경을 쓰는 학부모들에게 떼밀려 대부분의 고교생들은 학교와 학원 독서실을 전전하며 방학을 보내고 있다.

끊임없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방학기간중 보충수업은 전국 대부분의 고교에서 반강제적으로 행해지고 있고 특히 올해는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8월에 치러지기 때문에 고3 수험생들에게는 여름방학이 없는것과 다름없다.

서울 용문고는 이번 방학기간에 7월16∼29일,8월9∼17일 등 두차례의 보충수업계획을 짜놓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8월20일)의 최종정리 성격으로 이루어지는 이번 보충수업에서 학생들은 국 영 수과목을 중심으로 하루 4시간의 「수업」을 받고 나머지 시간도 교실에 남아 자습을 해야 한다. 보충수업에는 예체능계 지원학생 5∼6명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학생이 참여하고 있다.

서울 장충고 역시 7월과 8월 일주일씩 두차례 하루 5시간의 보충수업 계획을 세워 진행중이다. 보충수업에는 3학년은 거의 전원이 참가하고 있다. 고교 3학년생들에게 여름방학이란 고작 10여일로 방학이라는 말 자체가 사치로 치부된다.

서울 O고 3학년 강모군(17)의 방학동안 일과는 평소보다 더 바쁘게 짜여있다. 상오6시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강군은 영어단어를 암기한후 평소처럼 등교,상오 내내 보충수업을 받는다. 점심을 먹고나면 학교부근 사설독서실에서 공부하다 하오 6시에는 단과반 학원에 가 수학 물리과목을 수강한다. 학원수강이 끝나면 다시 독서실로 가 새벽 2시가 돼야 귀가한다.

고교 저학년들의 경우도 입시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방학다운 방학을 보내는 학생이 많지 않다. 방학전에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대다수 학생들이 방학이 끝날 때면 낮잠 잔 기억뿐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는게 일선교사들의 얘기다. 무계획한 방학생활이 가져다 준 당연한 결과다. 『방학중 소설 한권 읽는 것만도 큰 소득』이라고 평하는 교사들도 있다.

서울 S고 장모교사(37)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여름방학 여가기간을 입시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무의미하게 보내기 일쑤』라며 『영화 몇편 본게 방학생활의 전부인 학생도 더러있다』고 말했다. 정 교사는 『대학진학이라는 부담은 있겠지만 방학기간은 당연히 학생들에게 되돌려줘 취미활동과 인격도야에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책 한권도 못읽어

여고생들도 방학생활이 알맹이 없기로는 남자 고교생들과 비슷하다는 서울 S여고 임모교사(27·여)는 『방학을 알차게 보내도록 지도를 해봤자 개학하면 한결같이 무료하게 보냈다는 말 뿐』이라며 『방치된 것이나 다름없는 방학생활지도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구선진국의 경우 어떤가.

미국의 SAT,독일의 아비투어,일본의 공통시험 등 선진국에도 대입시관문은 있다. 그러나 이들 선진국 고교생들의 방학은 학력보충의 기회로도 이용되지만 취미생활 인격도야 사회생활 경험 등을 위해 다양하고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미 보스턴대에 재학중 방학을 이용해 연세대 외국어학당에 다니고 있는 김종희양(19)은 버지니아주에 있는 랭글리고를 졸업했다. 김양은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고교처럼 랭글리고에도 서머스쿨(여름학기)이 개설돼 있지만 지난 학기수업을 보충할 필요가 있는 일부학생과 다음 학기 학점을 미리 따려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서머스쿨 수강생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많은경험 쌓게해야

김양에 의하면 여름방학이면 학교에서 필수로 정한 15시간의 사회봉사활동 학점을 채우기위해 마을도서관에서 사서활동을 하며 사회생활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또 랭글리고 학생들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여름방학을 이용해 슈퍼마켓 수영장 어린이캠프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정당의 정치캠페인을 비롯한 사회활동에도 참여한다고 소개했다.

여행은 선진국 고교생들의 여름방학 활동에서 가장 보편화된 것이다. 독일 메르부쉬고를 졸업한 이준석군(19)은 5월 친구 4명과 함께 유레일패스를 이용해 떠났던 유럽여행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스위스 동구까지 여행하며 겪은 다양한 체험과 동구의 변화상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관광 이상의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군은 독일 고교생들의 경우 미국 고교생들에 비해 봉사활동의 기회는 적지만 신문배달원 식당종업원 판매원 등 아르바이트를 할 기회가 많아,4분의 1정도가 방학기간에 사회생활을 익히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와 비슷한 대학입시관문을 뚫고 동경대 사회학과에 재학중인 아리타 신(유전 신·24)군은 방학활용은 개개인의 의지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경우도 고3때는 방학중에도 상오 4시간 정도의 보충수업을 받고 있지만 대부분의 고교생들이 다양하게 방학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YMCA 청소년쉼터 한명섭간사(30)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청소년들이 다양하게 방학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봉쇄돼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학교수업 못지않게 사회교육 경험교육도 개인의 인성발전에 중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모자라는게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대 문용인교수(교육학)는 우리 고교교육에서 방학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점을 지적하고 방학중 권장할만한 활동으로 여행이나 캠핑 등 모험적인 것과 봉사활동 등 사회참여적인 것을 꼽았다.

문 교수는 또 현재 사회단체 등이 주관하는 각종 레크리에이션 전통문화강좌 등 프로그램이 소개되고 있지만 더욱 확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통문화 강습에 중점… 탈춤교실·도요지견학등 마련

여름방학을 맞아 사회단체들은 청소년들이 알찬 여름방학을 보내도록 하기 위해 각종 캠프나 강습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이번 여름방학 프로그램은 「우리 것」을 배우거나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특히 많은 배려를 한게 특징이다.

YMCA는 「청소년 옛터기행 1일캠프」를 통해 수난의 역사현장인 강화도와 자랑스런 고려청자를 구워내던 도요지를 묶은 견학코스를 마련했다.

흥사단도 「탈춤교실」 「풍물교실」을 마련,2000년대 선진한국의 주역이 될 중·고생들이 우리 전통문화를 체득할 수 있게 했다.

서울 청소년지도육성회는 전통문화를 야영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우리얼 계승 야영대회」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이원낙·김현수·장인철·여동은·현상엽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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