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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국의 혼미/최상룡(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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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국의 혼미/최상룡(한국논단)

입력
1993.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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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7월18일 일본의 총선거는 일본 정당사에서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 사건이며 그 결과는 앞으로 일본 정국에 엄청난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자민당이 1983년에 이어 다시 과반수 의석의 확보에 실패했고 사회당은 끝내 참패의 악몽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정책이나 이념에서 뚜렷한 대안 정당이 되기 어려운 3신당이 바람몰이로 크게 부상했다. 공명당은 예상대로,그리고 민사당은 의외로 선전했고 공산당은 1백29명의 후보를 내어 15명을 겨우 얻었을 뿐이다. 전후 일본에서 가장 흥미롭고 의미있는 선거라고 법석을 떨었지만 투표율은 중의원선거 사상 최저인 68%에 머물렀다. 이는 단순히 선진국형 무관심 이상으로 일본 국민의 정치불신이 극도에 달했음을 말해준다.일본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일본국민은 어떤 정치를 원하고 있는가. 이번 총선의 결과만 가지고는 금후 일본의 정국을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우며 가까운 장래에,집권구도 여하에 따라서는 금년중에라도 또 총선을 치르는 진풍경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따라서 여기서는 총리가 누가 되느냐라든가 어느 당과 어느 당이 연합하느냐 하는 식의 시나리오를 열거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정국의 혼미속에서도 앞으로 일본 정치에서 전개될 큰 줄이나 맥을 짚어보는 것이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째,이번 선거는 일본 정치사에서 보수·혁신의 구도였던 「55체제」의 붕괴를 고함과 동시에 새로운 정당체제의 모색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일본 정당의 체질속에 뿌리깊게 각인되어왔던 국내 냉전구조가 송두리째 지반침하해 버린 것이다. 자민당은 1955년 보수 합동이후 일본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미국에의 안보 무임승차에 힘입었고 한국전쟁후 동북아 냉전의 일방의 극에 안주하면서 그저 파벌내의 힘의 균형만 가지고도 장기집권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금권정치의 악순환에다 오랜 타성으로 적응장애를 보이고 있는 자민당 정권에 대해서 일본국민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당의 경우 시대착오적인 좌파세력과 좀더 일찍 떠났어야 할 우파가 무리하게 공존함으로써 이번에 같이 넘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어느 평론가의 얘기대로 일본 사회당은 분열할 수 있는 능력마저 상실했는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택할 수 있는 정당의 구도는 유럽형 보수대 혁신이 아니라 미국형 보수대 보수의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일본 사회에서도 사회주의 내지 사회민주주의는 이미 매력을 잃는지 오래다. 미국 점령기에 사회당이 참가하는 두차례의 연립정권에서도 사회당은 중도정권 이상의 변혁을 지향할 수 없었고 「55년 체제」 이후에는 누구라도 사회당의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예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볼때 일본의 보혁구도의 붕괴는 너무나 늦게 들이닥친 필연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이번 선거는 압도적인 보수회귀의 흐름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일본의 유권자는 반부패의 시대정신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반면,정치에 변화와 개혁이 와야 된다고 외치면서도 정치체제의 기본틀에 대해서는 현상유지의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공명당과 민사당이 실제로 일부 자민당 세력보다 더 보수적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에 당선된 일본 중의원의 이념적 색깔은 공산당과 극소수의 사회당 좌파를 제외한,거의 90%에 가까운 의원들이 기본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띠고 있음이 밝혀졌다. 설령 공명당 51석과 민사당 15석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전의석 5백11석 가운데 보수지지세력이 3백석 이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이번 선거에 나타난 중의원 의원의 보수적 대세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한 자민당이 나머지 보수세력과 연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설령 소수정권으로 버틴다하더라도 다른 보수당이 이른바 「각외협력」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처럼 신 보수세력의 개막을 고하는 일본의 정당정치를 보면서 한국의 정치인들은 무엇을 생각해야 될 것인가. 1960년이래 역대정권의 집권여당은 의식 무의식간에 일본의 자민당 정치를 하나의 모델로 하여 선거에 의한 장기집권을 도모해왔다. 지금의 민자당에도 결성 초기엔 그러한 단꿈을 버리지 못했던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3당 통합 때도 자민당 신화를 염두에 두면서 자유민주당의 이름만을 피해서 선택한 민주자유당이 1948년 일본에서 존재했던 집권 여당의 이름과 같다는 사실은 희화적이기조차 하다.

바야흐로 일본 정치는 그들 스스로가 의미부여한대로 건설적인 카오스이기도 하고 과도기의 진통이라고 볼 수도 있다. 향후 일본 정치는 상대적으로 청결하고 최소한 덜 부패한 신보수,50대 세력에 의해 서서히 세대교체해 갈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 세력이 어떤 정파를 주축으로 하든간에 경제력에 걸맞는,세계속의 일본의 정치적 역할을 극대화해 나갈 것이고 한국과의 관계에서는 국가이익의 상호존중을 전제로 한 합리적이고 냉정한 관계유지를 소망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한일관계에 종사하는 정치인,관료 그리고 민간인은 일본이 한국에 대해 가지는 국가이익과 한국이 일본에 대해 가지는 국가이익과 한국이 일본에 대해 가지는 국가이익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냉엄하게 따져서 닥쳐올 새로운 시대의 한일관계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우쭐함도 어리광도 아닌 성숙함으로 한일 두나라 사이에 「유착」이 아닌 합리적인 협력관계의 틀을 새로 짜야 할 것이다.<고대 교수·한국평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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