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0년만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갔다. 의도적으로 10년을 챙긴 것도 아니고 우연히 그렇게 됐다. USC(남가주대학)에서 1년6개월의 연수를 끝내고 LA를 떠나온게 83년 7월11일. 이번엔 미시간주립대에서 열린 한국학 학술대회 취재를 끝내고 귀국길에 10일 하오 LA에 들렀으니,에누리없는 10년만의 방문이다. ◆그렇다치더라도 한 개인의 「10년만의 방문」이 뭐 그리 큰 의미가 있겠는가. 북미대륙에서 우리 동포들이 가장 많이 몰려사는 LA의 한인사회가 10년전 그때처럼 활기있고 풍성했다면 10년의 연륜은 그나마 뜻깊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그때의 활기와 풍성함은 어디로 가고,모두가 지치고 피곤하고 그래서 서글퍼 보이기까지 했다. 여행자의 마음인들 편할리가 있었겠는가. ◆LA 한인사회는 3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첫째는 80년대 하반기부터 심화된 미국경제의 침체에 따른 고통이다. 미국경제는 말이 침체지 실상은 공황에 가깝다는게 식자들의 표현이다. 둘째는 지난해 4월 폭동으로 당한 피해의 상처가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많은 동포들이 그때 당한 피해를 복구하지 못한채 고통을 겪고 있었다. ◆셋째는 이러저러한 요인들이 겹친데다가 부동산 경기침체가 바닥에 이르러 부동산에 투자했던 수많은 동포들이 파탄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노래방같이 「되는」 업종이 생겼다하면 동포들끼리 과다경쟁을 하게 돼 또 다른 고통과 손해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60년대부터 본격화한 북미주 이민사에서 지금이 「최악의 상황」이라고까지 진단하는 동포 식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여행자의 마음 또한 황량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해서 귀국비행기안에서까지 희망을 잃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언제 우리들이 좋은 환경에서 성공했던가. 은근과 끈기는 그래서 우리 민족의 최대장점이 아니었던가. 이곳의 동포들은 멀잖아 분명히 재기할 수 있을 것이다」5년후쯤 다시 활기찬 모습을 보러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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