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중인 한완상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뉴욕과 워싱턴에서 한국기자들을 만나 자신의 통일관에 대한 한국언론의 보도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한국언론들이 나를 감상적·환상적인 통일주의자로 몰아가고 있으나 나는 누구보다 현실적인 통일관을 가지고 있다. 한국신문의 논객들은 대부분 좌파여서 통일에 대한 국민여론을 잘못 읽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그가 언론에 대한 불만을 나타낸 것은 처음이 아니고,이번 발언도 기자들의 여러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나왔으리라고 짐작된다. 그러므로 통일원장관이 미국까지 가서 한국 기자들에게 자신의 통일관을 변호해야 하는가라고 탓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에 「환상적 통일주의」에 대해서 한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상적 통일주의」 논란은 유행이 지난 논쟁이다. 「민족의 문제」를 언급함에 있어 「유행」이라는 말이 너무 경박하다면 「과거의 열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북한 인민들처럼 중병의 통일열병은 아니었지만,우리도 확실히 열병에 걸렸던 시기가 있었다. 『통일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인들 마다하랴』는 뜨거운 감정이 솟구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만 들어도 눈물이 흐르던 때가 있었다.
냉전체제가 무너지고,40여년동안 단절됐던 민족의 체온이 조금씩 감지되면서 통일에의 갈망이 폭발적으로 고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때맞춰 성취된 독일통일은 우리의 갈망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남북교류가 서서히 진행되고,북한 TV프로가 부분적으로 소개되면서 오히려 그리움은 진정되기 시작했다. 남한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의 행태에서 너무나 큰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고,40년동안 다른 체제 아래 헤어져 살던 「가난한 형제들」과 살림을 합치는 어려움을 실감하게 됐다. 독일이 겪는 통일후유증도 통일환상을 깨는데 큰 역할을 했다.
맹목적인 반공교육의 반작용이기도 했던 맹목적인 통일 열기에서 벗어나 국민들이 이제 통일을 현실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통일이란 지상목표가 아니라 민족의 행복과 번영을 가져오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우리가 과연 그런 통일을 지금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라는 우려를 하기 시작했다. 서독이 원해서 흡수통일을 한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도 어느날 우리의 의사나 준비태세와 관계없이 북의 동포를 갑자기 떠맡게될지 모른다는 가능성도 대부분의 국민이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이 모든 우려는 물론 북한 인민이 우리와 피를 나눈 「민족」이기 때문에 품게되는 것이다.
국민의 심정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통일원장관이 취임하자마자 새삼 「민족」을 강조하고,「환상적 통일주의」 논쟁이 벌어진 것은 사회분위기와 동떨어진 것이었다. 한 부총리는 이 모든 것을 언론과 「우파 논객들」 탓으로 돌리기에 앞서 자신에게 신중치 못한 언행은 없었는지 국민에게 오히려 해명을 해야 한다. 국민감정으로는 졸업한지 오래인 「환상적 통일주의」 논쟁이 미국에서 다시 전해지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씁쓸해하고 있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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