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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의 명예/이문희(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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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의 명예/이문희(화요칼럼)

입력
1993.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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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에는 6·25의 이미지도 있고 5·16의 이미지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후자가 더욱 부각된 것은 보는 쪽의 탓은 아니다. 5·16,12·12,5·17 등 「집권」이란 그릇된 무대에 너무 오래 서있는 동안 군은 존경과 신뢰의 대상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독선의 전위대로,때로는 부패의 진원지로 쉽사리 매도되기도 했다. 수많은 선량한 군이 일부의 탈선으로 도매금으로 매도되어서는 안된다는 여론들도 꽤 있었지만 굴절된 군의 이미지를 되돌려 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그러나 이쯤의 인식은 요즘 신문을 펼쳐 들면 택도 없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장군진급에 돈이 왔다 갔다하고,그 옛날 콩나물·된장 납품받을 때 있었던 비리가 비행기·군함을 사면서도 건재했고,여기에 군조직이 테러의 배후였다는 발표까지 들으면서 그 일탈의 정도에 경악하게 된다.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군이 이 시련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가 궁금하다.

○신뢰축적 필요

우리는 성직자를 대할 때 그가 성직에 봉사한다는 것만으로 존경이나 신뢰를 보낼 때가 많다. 지금은 많이 퇴색은 됐지만 그 구조는 아직은 유효하다고 본다. 이것은 약속이나 관행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여온 신뢰의 축적으로 가능했던 것들이다.

줄기찬 사정­개혁이후 우리 사회에 나타난 많은 변화중의 하나는 전에는 존경받던 집단들이 상당부분 전과 같은 존경이나 신뢰를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된 일이다. 일종의 무더기 명예실추 현상이다. 물론 집단의 일부 구성원의 잘못으로 그 집단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되겠지만 그건 한가한 원칙론일 뿐이다.

대학 교수다 장관이다 장군이다 하는 사람들이 비리에 연루돼 줄줄이 묶여 들어가는 것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분개했고 성직자를 대하기라도 하듯 그 직함에 무조건 주던 존경과 신뢰는 더 이상 주기 어렵게 됐음을 깨달았다. 개인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사회적 비중 때문에 그가 속한 그룹에 대한 믿음 자체가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다만 이런 무더기 명예실추현상이 우리 사회에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 것인가가 궁금할 뿐이다.

만약 우리 사회의 이런 신뢰구조가 모조리 깨졌다고 하자. 그래서 「장군도 장군 나름이지」하고 불신하기 시작하면 우선 보는 쪽에서 불편해진다. 품도 든다. 당사자로선 존경을 못받으니 조직 혹은 사회의 리더로서 령이 서지 않는다. 조직의 생명과도 같은 위계에도 치명상을 준다. 그러니 그 조직을 통합하고 이끌어가는데 실패하거나 혹 하더라도 몇배의 힘이 든다. 리더십의 위기가 아니라 조직의 위기로까지 발전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개혁이 궁극의 개선에 이르기 위한 것이라면 이런 구성원의 비리와 집단의 명예문제는 개혁과 사정작업의 중요한 포인트가 돼야 할 것이다. 이것은 개혁작업을 얼버무리자는 것이 아니라 그 부작용을 극소화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작업을 최대한 가속화해서 옥석을 속히 구분해주는 것도 그 하나이다. 그래서 「이젠 이 사람들을 믿으시오」하고 내놓을 책무가 지금 개혁주도팀에겐 있는 것이다.

이제와서 오늘의 군이 왜 이 모양이 되었는가를 따지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없다. 변신이란 과제가 너무 화급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군 스스로도 자신을 사정의 파도에 맡기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도려내고 바꾸는 자기개혁 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한다. 척결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냉정한 기준을 세우고 필요하다면 대대적인 정군작업도 벌일만하다.

며칠전 감사원에 적발돼 보직해임된 한 장성은 수뢰한 돈중 1억원은 부대경비로 썼다고 말했다. 하급 장교들이 부대운영에 사비를 들여야 하는 부담 때문에 경력에 필수적인 지휘관을 기피하는 현상마저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군 스스로 개혁을

우리에겐 군 위문이란 오랜 관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것도 지휘관의 이른바 「끗발」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던 것도 공지의 사실이다. 어느 부대에 가면 누가봐도 번지르르하리만큼 「위문」이 넘쳐 흐르고 부대내의 시설에서 부식에 이르기까지 「부티」가 절절 흐르는 부대가 있는가 하면 빠듯한 예산으로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안간힘하는,그러다가 어처구니 없는 부정에 휘말리고 마는 경우도 수없이 보아왔다.

이런 구조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들을 방치하고 하는 군에 대한 사정이나 개혁은 공염불이 되기 쉽다. 근검절약하는 기강에서부터 감군문제까지 건드리면서라도 이런 모순들은 제거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터져 나오면 잡아들이고 옷 벗기고 하는 지금 식은 실효도 없고 군이 지금의 처지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지금 개혁을 고통으로 참고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조차도 개혁후의 우리 사회의 모습에 확신이 없다. 바라던대로 순리가 통하는 정의로운 사회가 되어있을지,불신과 무사가 팽배한 매우 이기적인 사회가 돼있을지,이것도 저것도 아닌 부정만 전보다 좀 줄어든 상태일지 지금으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어느 분의 지적처럼 오늘 이 시점이 「개혁의 마지막 역사적 기회」라는 사실이고 그것이 군에는 더욱 절실하다는 사실이다.<편집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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