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강확립 중요”… 「반개혁」 쐐기/“경질땐 숙군작업 흠집” 고려도김영삼대통령은 19일 권영해 국방장관의 사표를 반려하는 쪽으로 결단을 내렸다.
김 대통령은 이날 하오 권 국방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상오에 박관용 비서실장을 통해 전달받은 사표를 직접 되돌려 주었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서 『나의 대담한 군 개혁의지를 충실히 집행해온 권 장관에 대해 신뢰를 보낸다』고 분명히 했다.
김 대통령은 『나는 취임후 국군 통수권자로서 사실상 이 나라를 40년 가까이 지배해온 군을 개혁하지 않고는 다른 개혁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할 수도 없다는 사실에 입각해 군개혁을 추진해왔으며 권 장관은 이를 잘 받들어 왔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또 『안보태세 확립과 군기강 확립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므로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분발해 달라』고 권 장관에게 당부했다.
재신임은 물론 격려도 아끼지 않은 것이다.
김 대통령이 여론에 밀려 사표제출에까지 이른 권 장관을 이처럼 재신임하고 격려한데는 몇가지 뜻이 함축돼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뜻이 이날 발언내용에 그대로 실려있다. 김 대통령은 취임초부터 정치·독직군인을 군에서 몰아내는 창군이래 최대의 숙군작업을 벌여왔다.
그 선봉에 내세워 군 개혁작업 주도하도록 한게 바로 권 국방장관이다. 권 국방장관은 입각 때부터 김 대통령이 선택한 인물이다.
이런 권 국방장관을 경질할 경우 군 지휘체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지않아도 청와대는 권 장관을 흔들어대는 세력의 존재여부에 의혹의 시선을 갖고 있었다. 군내부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본 것이다.
전역조치된 하나회 출신의 합참 작전부장 이충석소장 사건이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해도 이상기류가 감지되는 군내부 사정을 말해주고 있던 참이었다. 김 대통령이 이날 기강확립을 다시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또 설령 권 장관이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해도 결과는 자칫 비리관련 경질로 비쳐질 수도 있었다.
이 경우 지금까지의 대대적 군인사가 하자있는 인물에 의해 주도돼왔다는 평가를 면할 수 없게 된다.
새정부가 추진해온 군개혁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게 되는 셈이다.
김 대통령으로서는 권 장관 경질이 내각 전체에 미칠 영향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부 개각론이 소리 소문없이 흘러나오는 판에 권 장관 경질은 여기에 힘을 더해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권 장관이 당초 감사원 조사대상이 됐을 때부터 여러경로를 통해 확실한 신임의 뜻을 나타냈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권 장관은 국방차관 재직시 당연직인 전력증강위원장을 맡았을뿐 실세가 아니었기 때문에 율곡사업과 관련해 비리가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었다.
이경재대변인은 이날 발표에서도 『청와대는 그동안 권 장관의 율곡사업과 관련한 비리여부를 면밀히 조사했으나 아무런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이회창 감사원장도 율곡사업 감사결과 발표때 이를 확인하는 면죄부를 주었었다.
문제는 권 장관의 친동생이 무기중개상으로부터 5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폭로되면서 복잡해졌다.
청와대는 이때도 『권 장관 동생 개인의 일로서 권 장관은 전혀 몰랐으며 따라서 하등관계가 없다』고 옹호했다.
그러나 여론은 비등했고 결국 권 장관이 사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었다.
김 대통령은 19일 상오 박 비서실장을 통해 사표를 전달받고 한동안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장관의 사표제출과 수리 또는 반려는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게 관례였다. 한시라도 군 지휘체제의 공백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런데도 사표제출에서 반려까지 한나절 가까이 걸린 것이 김 대통령의 고심의 정도를 말해준다.
물론 일부에서는 저간의 경위나 속사정으로 보아 김 대통령의 결심은 이미 서있었고 단지 고심의 흔적을 보이려 한 것이라는 관측도 없는게 아니다. 사표제출과 반려경위를 소상히 공개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그렇다해도 김 대통령의 결단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개혁의지가 일부 훼손될 수도 있는 것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이번에도 가급적 한번 임명한 사람을 특단의 사정이 없는한 바꾸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마찬가지로 특유의 전면 돌파방식을 택했다.
그렇지만 이번 일이 김 대통령의 인사 등 국정운영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은 미칠 것으로 보인다.<최규식기자>최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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