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군과 국민의 관계에서 1993년은 최악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새정부 출범이후 잇달아 적발되는 온갖 비리로 군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국민은 엄청난 비리의 내용에 경악하고 있다. 군출신 대통령들이 30여년을 집권하는 동안 군의 횡포와 부패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짐작했던 사람들도 충격을 받고 있다. 군이 이 정도로 썩었던가. 이처럼 무서운 것이 없고,못하는 일이 없는 도덕파탄 상태였던가. 군이 끝없이 추락한다면 군의 사기와 국민감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많은 사람들은 분노를 넘어 걱정을 하고 있다.1960년 4·19 학생혁명이 일어났을 때 경찰은 국민의 뼈에 사무친 불신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국민은 경찰을 자유당 정권의 충견쯤으로 생각했다. 군대가 경찰을 대신하여 치안유지에 나섰을 때 거리의 시민들은 박수로 군대를 맞았다. 6·25의 와중에서 국민방위군 사건 등이 터져 군지도부의 부패가 국민을 분노하게 한 적은 있었지만,군은 늘 국민에게 믿음직스러운 존재였다.
그러나 학생혁명 1년만에 쿠데타로 집권한 군은 서서히 국민생활을 억압하고,지배하고,파괴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바뀌어갔다. 안기부나 보안사에 불려간다는 상상만으로도 사람들은 피가 얼어붙는 공포를 느꼈다. 군은 모든 것 위에 군림했다. 『육사위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사람들은 개탄했다.
지난 30여년동안 군이 저질러온 부패와 횡포가 지금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진급을 미끼로 수천만원·수억원의 뇌물을 부하들로부터 받은 장성들이 줄줄이 구속되고,전 국방장관 등이 무기상으로부터 받은 억대뇌물이 잇달아 터져나오고,군이 조직적으로 자행해온 정치테러들이 밝혀지고 있다.
5·16,5·18,12·12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쟁점이 되면서 과거에 나는 새도 떨어트릴만하던 군출신 권력자들이 재평가의 도마위에 오르고,그 와중에서 터져나온 「대원군 난초」 소동은 「개혁군인」들의 도덕성을 「도둑」의 수준으로 추락시켰다. 군인출신 대통령들의 권력남용,독단,엄청난 정치자금 끌어모으기와 화끈하게 나눠주기,무리를 무릅쓰는 정책추진 스타일 등이 부각되면서 그런 특성들이야말로 군사문화적 특성이라고 매도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은 30년간 권력의 핵심에 뿌리내린 군을 불과 몇달만에 개편하고 장악하는 놀라운 통치력을 발휘했다. 「하나회」 「알자회」 「12·12」 「율곡사업」 관련 등으로 난공불락의 별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노태우대통령이 임명했던 육 해 공군의 대장 9명중 살아남은 사람은 3명에 불과하다.
군이 겪는 이 모진 시련은 군이 정치중독에서 벗어나는 해독의 진통이다. 군과 국민의 관계는 바닥으로 내려갔으나,그 과정에서 소중한 합의가 있었다. 그것은 지금 군이 겪는 시련이 이 나라에서 영원히 쿠데타를 잠재우는 시련이라는 합의다. 그런 점에서 국민은 일부 군인들의 과오를 전체의 과오로 비난하기보다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려는 새출발을 성원해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