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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정보사 연결 치밀한 계획/커지는 「군정치테러단」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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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정보사 연결 치밀한 계획/커지는 「군정치테러단」 파장

입력
1993.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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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혼미정국 야 제압 공작 확실/안기부도 직간접 관련 가능성 커정보사의 정치테러단 운영사건이 일부 과잉충성 장교들의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라 당시 이진삼사령관의 직접 지시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아져 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이 사건이 보안사와 정보사 등 군내 양대 정보기관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드러나 과거 정치공작의 실상이 벗겨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군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이 당시 정국과 관련,군고도의 정치공작이었다고 보고 있다.

범행이 이루어진 85년은 2·12 총선으로 신민당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직선제 개헌 공방으로 정국이 살얼음판이었고 군내 일각에서는 친위쿠데타 거사설까지 나오던 때였다.

이같은 시기에 당시 야권의 핵이었던 김영삼 민추협 공동의장의 집에 침입하고 양순직 신민당 부총재를 테러한 것은 군부내 강경세력이 야당의 목소리를 제압하기 위해 벌인 정치공작이었다는 추론에 신빙성이 커져가고 있다.

범행을 계획한 85년의 군의 지휘계통은 윤성민 국방장관­정호용 육참총장­윤태균 정보본부장­이진삼 정보사령관으로 이어지며 보안사령관은 이종구 전 국방장관,안기부장은 장세동씨가 맡고 있다.

이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군내 친위세력인 하나회 회원들이거나 노태우 전 대통령의 9·9인맥 등 정치군인들로 대통령의 의중을 간파,정보기관끼리 연합공작에 의해 각종 정치테러를 벌였을 가능성이 높다.

정보사 3처장이었던 한진구씨가 군검찰 조사에서 이 사령관과 보안사 정보처장 박동준준장의 직접 지시에 의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데다 박씨가 한씨 조사직전 미국으로 도피한 사실은 정보사와 보안사 고위층의 협조관계를 방증하고 있다.

한씨는 6일 군수사당국의 참고인 조사를 받은뒤 8일 재소환을 앞두고 한때 잠적했을 때 박씨 등과 입을 맞춘뒤 보안사와 정보사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박씨를 출국토록 한 것으로 보인다.

군정보관계자들은 당시 정보기관의 특성상 정보사와 보안사뿐 아니라안기부도 직간접적으로 이 사건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보사와 보안사는 대북첩보 업무수행의 특수성으로 안기부의 조정·통제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88년 이진백 정보사령관에 의해 저질러진 오홍근씨 테러사건이나 87년 안기부의 신민당 창당방해사건인 용팔이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된 정치테러사건이었다는게 이들의 설명이다.

당시 안기부의 직간접적인 지시나 통제 혹은 협조없이 군이 독자적으로 정치공작을 저지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한씨가 이 사령관으로부터 활동자금으로 받았다는 9백만원도 안기부에서 나온 것이라는 얘기가 설득력있게 나돌고 있다.

앞으로 검찰이 이진삼씨를 조사해봐야 정확한 내용이 밝혀지겠지만 수사의 초점을 정보기관들의 상호 연계부분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 군 대다수의 시각이다.

5,6공 시절 횡행했던 정치공작의 실상을 이번 기회에 적나라하게 밝혀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이충재기자>

◎이진삼씨 어떤 사람인가/육사 15기중 선두주자… 9·9인맥 핵심/6공시절 부상… 정보사령관때 능력인정

정보사 정치테러단 운영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당시 정보사령관 이진삼 전 육참총장은 9·9인맥의 핵심인물이다.

충남 부여출신의 이씨는 육사 15기의 선두주자로 6공후 급부상한 전형적인 노태우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5공 초기 준장진급에서는 동기생중 선두였으나 「노태우계」로 점찍혀 5공정권의 견제를 많이 받았다는 얘기가 통설로 전해지고 있다.

82년 12월 소장으로 진급,사단장이 된 그가 고명승 전 3군사령관(예비역 대장) 등 동기생들에게 선두자리를 내주고 만 4년이 지난 87년 1월에야 가까스로 중장으로 승진한 사실이 이같은 통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씨는 사단장을 마치고 85년부터 86년까지 정보사령관을 지내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중장으로 진급할 수 있었다.

5공 정권의 배척을 받던 이씨는 그러나 6공 출범이후 노 대통령이 처음 실시한 88년 6월의 장군인사에서 육군 참모차장으로 영전됐다가 불과 10개월만인 89년 4월 대장으로 승진,1군사령관에 임명됐다.

또 1군사령관이 된지 1년2개월만인 90년 6월 육군 총수 자리에 올랐다.

육군의 최고자리에 오른 그는 그러나 당시 이종구 국방장관과 818군 구조개편,군장성 인사제도 등 사사건건 마찰을 빚다가 결국 임기를 6개월 앞둔 91년 12월 예편했다.

이씨는 6공 당시 실세로 인정받아 후원자가 많아 자금이 풍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산의 모대형 건설회사가 수시로 활동자금을 대주었다는 얘기도 파다했다.

이씨는 88년 정보사의 오홍근씨 테러사건과 관련,예편한 이진백 전 정보사령관의 친형으로 동생에 앞서 정보사령관을 지내 형제 모두 테러를 저지른 셈이 됐다. 군관계자들은 6공 때의 갖가지 정치공작에 이씨가 깊숙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며 보안사·안기부 등과 관계를 맺으며 정치테러단을 운영해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이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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