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은 취임후 많은 사람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식사를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얼굴을 익혔다. 비빔밥·떡만두·곰탕·냉면·칼국수 등 일품요리로 차려지는 청와대의 손님상은 과소비를 추방한 신한국의 상징으로 국민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고,검소한 청와대 살림살이를 알리는 홍보효과도 컸다.결코 언변이 좋다고 할 수 없는 대통령이 각계 각층의 손님을 맞아 대화를 이끄는 모습은 대통령 노릇의 고단함과 함께 늘 국민의 사랑속에 있고자하는 그의 유별난 노력을 실감하게 했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날마다 새로운 얘기를 하다가 혹시 실수를 할까봐 조마조마해 하기도 하고,소탈한 그의 언행에 미소짓기도 했다. 어린이날 청와대를 찾은 꼬마손님들이 『국민학교때 공부를 잘하셨나요?』라고 물었을 때 『그냥 보통… 중간쯤 했어』라고 대답하는 대통령의 얼굴은 국민학생들까지 미소짓게 할만큼 순진하게 보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격의없는 손님맞이가 국민들로 하여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때도 있었다. 지난 6월 대통령이 전군 지휘관들을 만찬에 초청하여 『윗저고리를 벗으라』고 권하며 막걸리를 함께 마셨다는 보도는 지난날 군인출신 대통령들과 그 후배들의 「끈끈한 술자리」를 연상시켰다. 훈장을 가슴에 단 군인의 정장이란 국민이 준 옷인데,만찬의 친밀감을 더하려고 대통령 앞에서 정복을 벗어도 되는가라는 의문을 남기기도 했다. 대통령의 군지휘관들과 격의없는 만찬을 원했다면 미리 평복차림으로 오라고 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대통령은 13일에도 방송작가 40여명을 초청하여 칼국수를 함께 했다.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인기가 있다고 반드시 좋은 드라마는 아니므로 TV의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해 더욱 책임감을 가져달라』 『아름답지 못한 유행어를 만들어 내거나 과다흡연·음주운전·과소비 등 도덕적·사회적 규범을 해치는 내용을 방영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등 당부를 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다 절실하고 옳은 말씀이지만,이제 많은 사람들은 청와대의 오찬·만찬을 줄여야 하는 시점에 왔다고 느끼고 있다. 대통령이 각계 각층 사람들을 만나 그 부문에 대해 언급하게 되면,결과적으로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통령이 일일이 지침을 내놓는 식이 된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이 취임한후 6월16일까지 1백10여일동안에 청와대에서 맞은 손님은 조찬 44회 4백4명,오찬 86회 3천7백15명,만찬 31회 2천4백3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조찬에는 장관들과의 업무조찬이 많았지만,1백10여일동안 1백60여회에 걸쳐 6천5백여명을 접대했고,하루 세끼를 손님과 함께 하는 날이 많았다면,그것은 「격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의 식사회동을 줄여나갈 방침이라고 한다. 『대통령은 그동안 각계 각층의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므로 이제는 사색하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청와대의 입장이다. 대통령은 손님을 맞는 「격무」에서 해방되어 좀더 고독해질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취임초 상견례를 끝내고,이제 대통령의 스케줄을 바꿔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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