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서울 1박2일 보도하는 한국신문들의 기사 가운데 굳이 영어를 괄호안에 넣은 표현이 더러 있다. 그중의 하나가 「민주화를 위한 달리기(Jogging for Democracy)」이다. 한·미 두 정상이 11일 아침 청와대 경내의 트랙을 15분 남짓 뛰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 그 이벤트의 내용이다. 마침 두 정상의 달리기 취미가 같다는데서 착상된 일정이었지만,두 정상이 대표하는 두 나라의 전통적인 동방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행사라고 하겠다.이날 달리기에는 「달리는 통역」이 함께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김 대통령은 자신의 달리기 철학을 클린턴 대통령에게 피력했다고 한다.
『…정치나 인생이나 국가에 대해 새롭고 신선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주요 일과중 하나로 매일 아침 조깅을 한다. 뛰면 건강에도 좋고 어제 한 일과 오늘의 일,그리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어서 좋다』
『뛰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이며 거기서 많은 것을 배운다. 조깅은 부드러운 흙 위에서 뛰어야 건강에 좋다』
김 대통령과의 달리기 일정을 염두에 두었던 결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클린턴 대통령도 전날인 10일 하오 국회연설에서 역시 달리기 철학을 피력했었다. 30여분간에 걸친 대연설의 결어가 바로 「마라톤 정신」이었음은 우연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을 한 한국의 황영조선수가 생각난다. 그의 에너지와 지구력은 한국의 정신을 보여준다. 한국은 오랜 고난의 역사를 통해 번영을 이뤘다. 그것은 마라톤정신이다. 우리는 다시 뛰어야 한다』
두 정상은 아침 달리기를 위해 청와대에서 만났을 때 서로의 옷차림을 두고 웃을 일이 있었다고 한다. 김 대통령은 평소 입던 조깅복장 대신에 아래 위 흰 트레이닝 차림이었고 클린턴 대통령은 평소 입던 반바지와 티셔츠 대신에 검은색 바지와 붉은색 조깅잠바 차림이었는데,이것은 평소의 조깅복장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미리 상대방 복장에 맞춰서 입은 탓이었다는 것이다. 서로의 옷에 맞춰 입고 나온 것인데 결과는 서로 틀리게 입게 된 꼴이다. 그러나 사정을 서로 알게 되자 두 정상은 크게 웃었다는 것이다. 그 자리서 클린턴 대통령은 말했다고 한다.
『나는 가끔씩 20분 정도 조깅을 해왔으나 앞으로는 김 대통령처럼 매일 30분씩 뛰도록 해보겠다. 특히 땀복을 입고 뛰어보니 땀도 많이 나고 운동량도 많다』
괄호 열고 영어 원문을 넣은 또 하나의 기사는 클린턴의 말을 직접 인용한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있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까지 찾아가서,그러니까 바로 1백m 전방에서 북한군 병사들이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최후(The end of their Country)」를 경고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개발해 사용하려 한다면 북한은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핵개발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도 이를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남북 분계선이 가로지른 「돌아오지 않는 다리」 위에 선 것은 클린턴 대통령이 처음이다. 그곳은 76년 여름의 이른바 도끼만행사건이 벌어진 현장이기도 하다.
『북한의 최후』는 비록 핵무기의 「사용」이 전제돼 있기는 하나 최상급의 경고로 들린다. 무시무시한 말이다. 갑자기 휴전협정체제 40년의 현실이 냉엄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극적으로 의도된 것으로 보이는 클린턴의 이러한 경고는 북한의 핵이 한반도내의 문제이거나 민족내부의 과제로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국제문제」로서 이해돼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클린턴은 그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서로의 평소 복장에 맞춰 바꿔 입은 옷의 해프닝은 우애 좋은 형제가 밤새워 쌀섬을 서로의 집으로 져날랐다는 고사를 생각나게 하는 미담이다. 그 미담은 인간적이다. 두 정상의 개인적 친분뿐 아니라 두 나라의 우의를 상징하는데에도 「민주화를 위한 달리기」는 여전히 신선하다.
그러나 문제로 남는 것이 있다. 그 행방이 궁금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의 신 통일정책은 지금 어디쯤을 달려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문제에 걸려서 당황하고 방황하다가 실종되어버린 듯한 신 통일정책에도 더 「새롭고 신선한 생각」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행여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이미 건너가 버렸다거나 「최후」를 알리는 핫라인이 울린다거나 하는 일이 있대서야 될 말인가.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본사 주필>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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