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한 추궁과 녹음기같은 답변. 8일 상오 국회 재무위의 풍경은 이랬다.공방의 주제는 경제개혁의 요체인 금융실명제의 실시시기와 방법이었다. 야당 의원들은 각종 자료와 다각도의 질의를 통해 금융실명제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했다. 간간이 여당 의원들도 비슷한 톤의 질의를 던졌다.
그러나 숱한 질의에도 불구하고 홍재형 재무장관의 답변은 딱 한가지였다.
『신경제 5개년 기간중 가능한한 조기에 실시한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과 시기를 신중히 검토해 택할 것이다』 홍 장관은 적어도 열번이상 이 말을 되풀이했다. 거의 자구 하나 틀리지 않았고 표정마저 일관되었다.
주무장관의 입에서 금융실명제의 「금」자만 나와도 금융시장과 주식거래가 춤을 추는 상황이니 「조심주의」가 현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질의와 답변의 전개과정을 꼼꼼히 따져보면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무성의가 짙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사단은 한 야당 의원이 『금융실명제의 부작용이 언제쯤 최소화될 것인가』라고 물으면서부터 시작됐다.
홍 장관의 답은 예상대로 『적정한 시기가 언제일지 연구중』이었다. 그러자 『몇년전 금융실명제 기획단이 활동하다가 해체됐는데 그때도 후유증을 우려하는 의견이 강했다. 기획단 활동의 전말을 밝혀달라』는 추궁이 나왔다. 홍 장관은 『당시는 내가 장관이 아니어서 모르겠다』고 잘라 말했다. 질의한 의원도 다른 의원들도 무색해 했다.
이에 대해 한 중진의원이 『무슨 무책임한 얘기냐. 업무파악도 안돼있느냐』고 고함을 치자 장관의 사과가 이어졌다.
이어 『금융실명제가 예금실명제만인지 종합과세까지 포함하는지 밝혀달라』는 질의가 나왔지만 역시 『말못하겠다』는 식의 답변이 계속되었다.
재무위의 분위기는 불쾌감 그 자체였다. 실시시기라는 핵심사안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기획단 운영내역이나 실명제 내용까지 답변하지 못할 사안은 아니었다. 국회는 변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금융실명제에 대한 홍 장관의 답변은 옛날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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