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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 퇴장 남는 상흔/홍선근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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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 퇴장 남는 상흔/홍선근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3.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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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레이온이 결국 퇴장명령을 받았다. 국내에서 유일한 인견 생산업체이기에 반드시 공장을 존속시켜야 한다는 산업정책상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공장가동」을 전제로는 사려는 기업이 없어 공장을 폐쇄,그냥 땅만 팔기로 한 것이다.공장용지에서 주거용으로의 용도변경을 허용해 땅을 팔게 되면 그동안 외면하던 기업들이 너무나도 나서게 된다. 경기 미금시의 도심에 위치한 14만7천평의 부지가 아파트용지로서는 서울인접의 수도권 일대에서 더이상 찾기 힘든 황금의 땅이기 때문이다.

이 공장은 양복의 안감으로 쓰이고 있는 최종생산품(인견)의 보드라운 촉감과는 영 딴판으로 생산공정에 사용되는 이황화탄소(CS2) 때문에 거친 유독성 가스를 뿜어 34년간 대표적 공해업체로 손꼽혀왔다. 공장주변의 쇠를 시뻘건 녹으로 삭여버리는 맹독성 때문에 직업병 환자로 공식 판정받은 근로자만도 2백65명에 달하게 됐으며 주변 주민의 생활을 황폐화시켜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초기 산업화 단계의 숱한 상흔들이 아파트단지 조성과 함께 고스란히 묻히게 된다.

그러나 말끔히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도 이제는 국내 산업발달사의 산 증거물로서 보존하는 여유를 가질 때가 되었다. 지난 59년 화신재벌의 박흥식씨가 일본으로부터 이미 20년 이상 사용한 중고기계를 들여와 설립한 공해공장,폐를 찌르는 악취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일자리가 아쉬워 이곳을 거쳐간 1만2천여명의 근로자들,여러차례 주인이 바뀌어 흥한화학섬유(주)에서 세진레이온으로,또 원진레이온으로 상호변경을 거듭해온 부실기업. 이러한 특징들은 바로 우리 산업발전 과정을 상징적으로 압축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손으로 만지기만해도 부서지는 녹슨 기계를 비롯해 원진레이온의 대표적 설비와 상징적 공해물은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이후에도 단지의 한모퉁이에나마 일부 보존함이 마땅하다. 눈에 보이는 흔적을 없앤다고 해서 과거사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왜곡될 뿐이다.

새로 조성된 아파트단지의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에게도 실물로 보존된 원진레이온은 앞세대의 험고와 희생을 소리없이 힘있게 들려주는 희귀한 긍정적 역사물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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