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하루전 지령 “말도 안돼”/CIA·FBI도 “용의자진술 신빙성 의심”미국은 이라크가 부시 전 대통령의 암살을 기도했다며 이를 응징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지난달말 바그다드에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라크는 과연 조직적으로 부시의 암살을 기도했을까. 영국의 권위있는 신문들은 최근 무력행사로까지 번진 이라크의 부시 암살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후세인 정권이 부시의 암살을 기도했다는 미국과 쿠웨이트의 주장은 체포된 「암살기도범」들의 진술과 사막에서 발견된 폭탄차량이라는 증거에 토대를 두고 있다. 쿠웨이트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14명의 암살기도 용의자중 이라크인 남자간호사 윌리 가잘리(36)는 지난 4월8일 바스라에서 아부 라페드라는 이라크 정보요원을 만났으며 라페드는 1백80파운드의 폭탄을 실은 도요타 랜드크루저를 제공하고 쿠웨이대학에 차를 주차시킨뒤 부시가 방문할 때 폭발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또다른 주요용의자인 아미르 알아사디(33)는 바스라에서 모하메드 자와드라는 이라크 정보요원으로부터 다이너마이트 스틱 10개를 받았으며 쿠웨이트시의 자동차 상점을 폭파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 대가로 위스키 13병과 1만5천디나르를 받았다고 밝혔다.
쿠웨이트 경찰은 또 사막에서 발견한 도요타 차량을 물증으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과 쿠웨이트는 이 차에 실린 폭탄과 테러수법이 이라크 정보당국이 지금까지 쿠르드족 등을 상대로 행한 전형적인 폭탄테러수법이라며 이라크의 조직적인 암살기도가 개재돼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첫번째 제기되는 의문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전직 미국 대통령에 대한 암살계획이 너무도 허술하다는 것이다. 우선 이라크 정보요원 라페드가 가잘리에게 범행을 지령한 것은 불과 암살예정일 하루전이다. 이라크의 차량을 이용하고 이미 사용해왔던 수법으로 폭탄을 적재해 쉽게 이라크의 범행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도록 한다는 것도 납득되지 않는 대목이다. 알아사디는 위스키 밀수꾼 가잘리는 간호사로 밝혀졌는데 공작경험이 없는 인물을 중대한 거사의 공작요원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주장에도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다. 뛰어난 첩보·공작능력을 자랑하는 이라크 정보당국이 이처럼 엉성하게 부시의 암살을 기도했다는 것은 상식밖의 일이다.
또 하나의 중대한 문제점은 자백의 임의성 여부이다. 14명의 용의자들은 재판이 시작되기전까지는 일절 변호사를 접견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고문 등 자백을 강요하기 위한 행위가 자행됐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으며 한 용의자는 법정에서 구타를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더욱이 CIA와 FBI조차도 『쿠웨이트 경찰당국이 받아낸 용의자들의 진술에 신빙성을 부여하기 힘들었다』는 견해를 미국언론에 몇차례 내비친바 있다.
영국언론은 이같은 의문점들에 비추어 후세인 정권이 조직적으로 부시를 암살하려 했다는 주장에는 적지않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쿠웨이트 사법당국이 공정하게 사건의 진실을 규명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용의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하지 않는한 미국과 유엔에 유죄를 선고해야 할 입장에 놓인 쿠웨이트 법정이 이 사건을 정치적 재판이 아닌 법적 재판으로 끌고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런던=원인성특파원>런던=원인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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