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개방사회에선 다양한 의견과 주장이 펼쳐지게 마련이다. 통제와 억압이 풀리고 문민·개혁시대가 열리면서 각계 각층의 요구와 욕구불만이 마치 분수처럼 치솟고 있다. 저마다 목청이 요란하다. 사소한 민원시비로부터 이해가 얽힌 집단간의 갈등과 대립,그리고 노사분규 등이 사회안정을 흐트려 놓는 수위에 이르렀다.목소리만 높은게 아니라 항의와 주장을 넘어 시위와 집단행동을 예사로 벌인다. 경찰청 집계로는 지난 6월 한달동안에만 7만여명이 참가한 2백41회의 집단민원 시위가 있었다는 것이다.
정당한 항의나 시위들을 나무랄 까닭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함은 두가지 측면에서이다.
첫째는 그 배경에 도사린 집단이기주의 심리이다. 이기주의란 상대와 남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자기이익과 의사를 보호하고 관철시키려는 생각이자 행동이다. 공동의 이익과 합의를 추구하지 않고 실속만 차리면 그만이라는 자세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사례를 우리는 지금도 지켜보고 있다. 아직도 수습실마리를 못찾고 있는 한의·약 파동이 대표적이다. 전면 수업거부로 집단유급 위기에 몰린 한의대생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휴업을 강행했던 약사들의 불만도 그대로 남았으며,모처럼 소집된 약사법 개정추진위원회는 위원 숫자 시비로 불발됐다. 노사분쟁도 그렇다. 자기 주장만이 있지,타협과 양보의 기색은 어느 쪽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나라의 경제형편이나 국민의 안타까움은 아랑곳없이 갈데까지 가보자는 배짱싸움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밖의 집단행동들도 무리한 요구가 적지 않다. 현실로 통합할 수 없는 억지와 떼쓰기 등 집단이기주의가 곳곳에서 목청을 높인다. 물론 민원 가운데엔 행정관청의 과오나 우유부단에 기인한 것도 있을줄 안다.
둘째는 주장과 표현의 방법이 온당치 않다. 집단행동은 대화가 아니라 힘으로 밀어보자는 의사표시와 같다. 다중의 힘으로 상대를 위압하고 자기 뜻만 채우면 된다는 발상은 시민의식이 없다는 반증에 지나지 않는다.
욕구의 달성이 중요하다면 형식과 절차도 신중하고 정정당당해야 한다. 문민시대이니까 큰소리만 치면 통한다는 발상은 착각일 뿐이다. 지금은 현실개혁과 개선의 통로가 활짝 열려 있다. 굳이 무관한 사람들의 눈살까지 찌푸리게 하며 아우성을 칠 필요가 없다.
어떠한 집단이기주의라도 그것은 개혁의 걸림돌이며 사회발전과 안정의 암초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선 목소리부터 낮추자. 그런 다음 합리적인 시민의식과 공동체의식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집단이기주의는 나라전체를 망치는 악덕이다. 행동에 앞서 생각을 가다듬는 일이 중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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