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중복편성」은 시간표의 베끼기 경쟁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래도 중복편성이 시빗거리였던 때는 고전적인 시대였다.이제는 아예 딴 텔레비전의 인기프로를 서로 모방하는 프로그램 베끼기가 유행하고 있다. 홍수처럼 쏟아진 코믹드라마나 인기인 위주의 토크쇼가 최근에 두드러진 예다. 그 어느 것보다도 초저녁 황금시간대를 차지하는 10대 위주 연예·오락프로가 그 대표적인 예다.
우리 텔레비전은 이렇게 해서 자신의 발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첫째는 창의성의 포기라는 족쇄이고,둘째는 「획일화」의 족쇄다.
창의성을 포기하고 획일화로 가는 것은 그러나 세번째의 족쇄를 준비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프로그램의 저질화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텔레비전은 저질화로의 획일화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우리 텔레비전의 획일적인 저질화로 치닫게 된 현상은 방송국들의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속화해왔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저질화는 지난 봄 프로그램 개편에서 더욱 악화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 YMCA의 모니터 결과에 의하면 오락프로는 KBS2의 63.6%에 이어 SBS 60.2%,MBC 49.1%였고 KBS1이 29.3%였다.
이처럼 프로개편 때마나 저질화로 굴러떨어지고 있는 텔레비전에 대해 서울 YMCA 등 10여개 시민단체들이 항의운동에 나섰다. 그 구호는 「7월7일 우리 모두 텔레비전을 끕시다」나 「7월7일 하루를 참아 3백65일 좋은 방송을 봅시다」. 내일 하루를 텔레비전 없는 날로 삼자는 것이다.
86년의 텔레비전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은 보도의 공정성 비판이 그 발단이었다. 우리 방송사상 프로그램의 「품질」을 전반적으로 문제삼아 하룻동안 시청거부운동이 벌어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싫든 좋든 텔레비전은 이제 사회체제와 문화체제의 중요한 대들보의 하나다. 하루만이라도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날로 하자는 시민운동은 그만큼 큰 충격을 주는 일로 평가돼야 할 것이다.
시민단체들의 「7월7일」은 텔레비전을 보는 시청자와 방송사 모두에게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다. 텔레비전속에서 살고 있는 시청자에게는 비판과 함께 수동적 시청자 자신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주고,방송사에게도 그만한 영향을 줄 것이다.
시민단체들의 「하루 텔레비전 안보기」운동은 행정당국의 「규제」로 못한 프로그램의 품질향상을 비권력적인 방법으로 찾는다는데에 뜻이 있을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텔레비전은 「바보상자」일 수도 있지만,「현자의 상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기대를 거는 이유는 바로 현자의 가능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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