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오랜 준비끝에 사법부 개혁안을 확정·발표했다. 이 자체 개혁안은 변협 등 재야단체들의 강력한 「정치판사」 퇴진요구와 대법원의 「사법부 독립 침해」 반발이 맞물려 소위 「사법부 개혁파동」의 조짐이 한결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게 한다.발표된 개혁안의 핵심은 「법규와 제도정비를 통한 적극적 개혁」은 추진하지만 「여론이나 주관적 기준에 의한 인적개혁」에는 반대한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서울민사지법 단독판사들의 집단 건의 등으로 촉발된 사법부의 경직된 제도와 관료적 인사관행의 타파 및 깨끗한 풍토조성을 위한 변호사·검사의 판사실 출입제한 등 개혁조치는 절치에 따라 단계적으로 실시될 전망이다. 법관인사위원회의 의결기구화와 법관회의의 상설화,그리고 직급별 법관회의 및 사건담당별 법관회의도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제도개혁을 위해 사법제도 심의위원회를 구성,실무작업에 재야 법조인·교수 등 외부인사를 광범위하게 참여시키고 공청회를 개최하겠다는 약속도 들어있다. 이밖에 법관임용제도 및 부장판사직급 폐지 등 구조조정,서울민사형사지법 통합 등 위원회 심의 및 법률 개정대상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같은 개혁안의 내용은 유달리 보수성이 강하고 경직되었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줘온 사법부로서는 실로 오랜만의 개혁의지 발로로 볼 수도 있겠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내부진통이 거듭되다보니 사법부도 낡은 껍질을 벗을 것을 다짐하지 않을 수 없는 나름대로의 막다른 상황인식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개혁안 확정발표에도 불구하고 여러 미진한 문제가 아직은 남아있다고 봐야 하겠다.
먼저 법과 제도를 통한 개혁의 방향은 일단 제시되었다지만 그 실천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있는 것이기에 진정한 사법부 개혁은 이제 먼 노정을 딛는 첫 걸음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또한 법관회의·법관인사위원회·사법제도 심의위원회 등 개혁중추기구의 합리적 설립과 민주적 운영과정이 목표 못지않게 더욱 중요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현실은 이같은 법과 제도를 통한 개혁보다 더욱 긴급하고 폭발성을 지닌 청산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하고 있음이 엄연한 사실이다.
변협과 민변 등 재야단체와 일부 소장판사들에 의해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바,절대권력에 영합하거나 실체적 진실에 「침묵」해온 표본적 「정치판사」들의 퇴진요구야말로 사법개혁 파동의 핵이자 태풍의 눈인 것이다.
특히 이들 「정치판사」의 범주엔 사법부 수뇌부가 포함되어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고조되어 있다 하겠다.
그런데도 이같은 「파동의 핵」을 풀 수 있는 지혜로운 처방은 나와있지 않다. 오히려 대결과 긴장의 연속이다. 재야단체의 퇴진요구 강공에 대해 사법부 수뇌가 『정치판사란 없다』며 독립성 침해라고 반발하자,표본적 불공정 재판사례 백서를 발간하겠다는 재응수가 있었다. 특히 변협은 이번 개혁안 속에 자성과 참회 내용이 없음을 들어 대법원장과 법원 행정처장 사퇴를 주장,파동은 한층 격화되기에 이르렀다.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를 위해서도 「마녀사냥」식 청산까지를 원하는 국민은 없다. 그러나 사법부의 최종 개혁안에서마저 이런 난제를 자율해결할 수 있는 겸허한 자성방안이 없는 것은 분명 아쉽다는 소리를 들을만 하다.
사법부 개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냉정과 지혜를 다해 파동의 위기를 수습하고 진정한 개혁을 성취해내는 막중한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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