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유착” 보수당에 집중 화살/“국고지원제도 도입하자” 압력「깨끗한 정치」를 자부하는 영국도 요즘 정당들의 정치자금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영 언론들은 최근 문제있는 돈이 정당에 흘러들어갔다며 폭로경쟁을 벌여 정치인들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
정치자금 파문은 횡령과 회계부정혐의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나 있던중 키프러스로 도피한 아실나디르라는 터키계 영국 기업인의 돈이 보수당에 유입됐다는 보도에서 비롯됐다. 나디르는 보수당에 44만파운드(약 5억3천만원)를 헌금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돈이 결국 기업에서 부당하게 빼돌린 더러운 돈이 아니냐는 것이다. 곧이어 가디언지는 보수당 정권의 실세중 한사람인 마이클 헤젤타인 상공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에게 정치헌금을 요청해 7백만파운드(약 84억원)를 받아냈다고 보도했다. 보수당측은 이를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의혹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또 선데이 타임스지는 지난달 27일자에서 보수당이 영국 닛산의 전 사장 옥타이 보트나로부터 1백만파운드(약 13억원)를 받은 것을 비롯,홍콩 재벌 리카싱에게서 50만파운드,또다른 홍콩 기업인으로부터 5만파운드를 받는 등 외국기업인들로부터 상당수액수의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보트나가 엄청난 규모의 탈세를 하고 도피한 인물이고 리카싱 역시 주가조작의 혐의가 있는 사람이라고 지적,헌납받은 돈이 깨끗하지 못하고 외국인이 정치헌금을 한데는 유형무형의 반대급부가 전제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노동당 역시 탈세를 저지른 그리스 출신의 기업인 차틸라오스 코스타로부터 1만1천파운드(약 1천3백만원)를 받은 것으로 보도돼 논란에 휘말렸다. 노동당은 액수가 얼마 안돼서인지 재빨리 이를 반환하겠다고 발표,비난여론을 따돌리고 보수당에 은근히 압력을 가하고 있다.
영국 정당에 정치자금이 공급되는 경로는 뚜렷하게 구분이 된다. 노동당은 당명에서부터 노동자의 당임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기업인으로부터의 정치헌금은 거의 없다. 대신 노동조합들이 재정의 상당부분을 부담하고 당원들이 당비를 모아 당을 꾸려간다. 이 때문에 노조의 발언권이 지나치다 하여 문제가 되기도 한다. 중요정책 결정과 후보선정 등에서 노조의 투표권이 40∼60%나 돼 당지도부는 이를 제한하려하고 있으나 노조측은 돈줄을 무기로 내세워 맞서는 형국이다.
반면 보수당의 자금은 주로 기업인에게 의존하고 있다. 그런만큼 자금유입과정이 베일에 가려있고 「정경유착」의 의혹을 살 소지도 안고 있다. 이번의 정치자금 파문이 보수당쪽에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름대로의 경로를 통해 정치자금을 공급받고 있지만 두 당 모두 빚더미에 올라있는 상태이다. 노동당은 지난해 선거에서 승리를 자신,홍보비 등 중앙당 차원의 선거비용을 과다지출해 적자를 안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들의 정치헌금을 호소하는 신문광고를 내고 중앙당 요원을 감축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상대적으로 재정상태가 넉넉한 편인 보수당은 존 메이저의 집권이후 정치자금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들은 기업인들이 노조를 강력히 억제하고 기업인 위주의 정책을 견지해왔던 대처 때와는 달리 메이저의 애매한 정책노선에 불만을 갖고 정치자금을 잘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영국 정당들이 재정난을 겪고 정치자금 파문이 일어나는데는 국고보조제도가 없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된다.
유럽의 모든 국가가 정당의 재정을 국고에서 보조하고 있으나 영국만은 예외이다. 이는 영국의 독특한 경험주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노조와 기업을 통해 각각 정치자금을 공급받고 개인후보의 선거비용을 극소화해 돈안드는 정치풍토를 만듦으로써 큰 무리없이 정당을 운영할 수 있었던 만큼 굳이 국민세금으로 정당을 도와줄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근래들어 신문광고를 비롯한 정치홍보비가 급증해 중앙당 차원의 정치자금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투명한 돈만으로 자급자족하기가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 등 일부 언론에서는 영국이 금권정치의 늪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제도가 도입되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과 같은 정치자금 파문은 결국 정치와 돈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값진 경험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런던=원인성특파원>런던=원인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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