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공원의 휴일은 노래로 시작된다. 관리사무소는 성능좋은 확성기로 이른 아침부터 유행가를 틀면서 손님을 맞기 시작한다. 공원에 나온 사람들은 하루종일 노래를 듣는다. 운동을 하면서,걸으면서,풀밭에 앉아 쉬면서,온갖 유행가를 다 들어야 한다. 공원에 나간 사람들만이 아니다. 한강변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하루종일 유행가를 듣는다.버스를 타도,택시를 타도 라디오방송을 크게 틀고 가요를 들려준다. 소리가 쏟아져 내리는 스피커밑에 잘못 앉았다가는 귀청이 떨어져 나갈듯한 고통을 겪는다. 운전기사에게 『소리 좀 줄여달라』든가 『방송을 꺼달라』고 부탁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부탁해봤자 한번 쓱 훑어볼뿐 소리를 줄여주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 버스,내 택시인데 라디오도 내 마음대로 못듣느냐는 태도다. 손님들에 대한 서비스로 노래를 들려주는 것인데,당신 혼자 싫다고 해서 방송을 끌수는 없으니 정 싫으면 당신이 차에서 내리라는 식이다.
유행가는 쉬러가는 사람들까지 쫓아간다. 대부분의 관광버스들은 노래를 틀어대고,손님들에게 노래를 시킨다. 노래하라는 것이 부담스러워 단체관광에 못가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같은버스를 타고 놀러가는 사람들끼리 흉허물없이 놀자는 뜻에서 노래부르기를 강요하는 관광안내원들은 무례를 무릅쓰기도 한다.
산에서도 유행가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 산에 오는 사람들중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허리에 차고 볼륨을 높여 방송을 들으며 걷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런 사람이 앞서 가거나 뒤에서 따라 올라오면 등산이 몇배나 힘들어진다. 산에 와서까지 라디오 소리를 귀따갑게 들어야 하는가라는 짜증이 솟구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노래부르기를 좋아하고,또 노래솜씨도 뛰어나다. 이런 저런 모임에서 노래를 시키면 모두가 멋지게 유행가 한두곡쯤은 부를줄 안다. 노래방이 곳곳에서 번창하고,주부들은 좀더 노래를 잘 부르려고 가요교실에 가서 유행가를 배운다. 가요무대·노래자랑·주부가요열창은 TV의 최고 인기프로들이다.
그러나 「노래를 듣지 않을 권리」도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버스나 택시에서 손님의 귀청이 떠나가도록 노래를 들려주는 나라야말로 전형적인 후진국이다. 운전기사들도 시끄러운 노래를 하루종일 듣다보면 더 피곤해지고 더 불친절해질 것이다.
어떤 날 택시에서,버스에서,공원에서,TV에서 하루종일 유행가를 듣다보면 『아 대한민국에서 유행가로부터 행방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비명이 터져나오곤 한다. 우리는 이제 집단적으로 강요되는 노래공해에서 해방되어 각자 혼자일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 공공장소에서 노래를 틀어대는 것은 서비스가 아니고 공해다. 우리 사회는 좀더 조용해져야 한다. 그래야 생각다운 생각도 나고,여유도 생기고,무질서가 눈에 띄게 될 것이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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