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90년대들어 국제환경의 변화로 개방과 개혁을 제한적으로 수용하면서 체제를 보존하기 위해 대남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지난해에는 「남북 기본합의서」와 「비핵공동선언」의 발효로 남북한간 대화와 화해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었고 남북통일의 전망도 한층 밝아졌다. 그러나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이에 따른 핵무기 개발의혹의 증폭으로 남북 관계자는 또 다시 경색국면에 들어갔다.21세기를 겨냥한 중국과 일본의 군비증강과 탈냉전시대의 새로운 국제질서속에 한반도 주변정세는 한국안보의 새로운 도전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기본합의서와 비핵선언의 실천과정에서도 많은 장애물과 문제점이 드러나 향후 남북관계가 가시적인 성과가 불투명하게 되고 있다. 따라서 양측관계에 진전이 있기까지 국방비 삭감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한국의 국방비를 현 수준으로 유지시키고 통일에 대비하여 병력과 무기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동시 국민안보의식 교육을 강화하여야 할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문제는 이제 심각한 국제문제로 확대되었다. 남북한은 비핵화 공동선언이후 지금까지 모두 13차례의 남북 핵통제 공동위원회 전체회의와 9차례의 위원장 및 위원접촉을 가졌지만 상호 핵사찰 규정안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더욱이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하지 않은 핵저장시설로 믿어지는 2개 시설에 대한 IAEA의 특별사찰을 거부하였고 3월12일에는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핵무기 개발의혹을 더욱 증폭시킴으로써 한국의 안보는 커다란 도전에 직면케 됐다.
북한 핵의혹에 대한 해결없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발효된지 1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실천단계에 진입하지도 못한채 「사문서」로 남게 될 가능성마저 전혀 배제할 수 없게 되어 대단히 유감스럽고 안타깝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국방비 삭감을 논의한다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닐까 생각한다.
향후 북한 핵의혹문제가 풀리고 남북관계의 개선이 가시화된다면 한국의 국방비 삭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한국의 국방비를 삭감할만한 필요충분조건이 결여되어 있다. 국방비 삭감의 선행조건이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할 국방비 삭감논의는 현명하지 못한 짓이다.
그러면 한국의 국방비 삭감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인가. 필자는 3가지 선행조건을 제시하고 싶다.
첫째,「남북한간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실천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남북합의서는 남북관계에서 남북한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평화대헌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합의서 제2장 남북 불가침부문에서 상호무역 불사용,불가침,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을 규정한 합의조항이 잘 이행된다면 한국의 국방비 삭감을 고려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남북이 실천해야 한다. 북한이 이 선언을 이행하고 실천한다면 이는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현재의 핵무기 개발의혹 문제는 사라질 것이다.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무엇보다도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이 이행될 수 있도록 남북이 공동노력해야 할 것이다.
셋째,남북한은 최소한의 전쟁억지력을 유지해야 한다. 군비통제가 반드시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정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함으로써 전쟁억지력을 갖고 나아가 제2의 한국전쟁을 방지할 수 있다. 향후 한반도의 안보는 남북관계 진전과 그 속도에 달려있는 만큼 한반도의 안보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국방비 삭감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적정수준의 군비보유는 남북한간의 전쟁재발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동북아 정세속에서 우리의 안보를 보증하는 안정판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또 러시아 국내정치의 불안정과 중국의 해군력 증강,일본 군사력 증강은 장기적으로 볼때 우리 안보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3가지 필요충분조건이 국방비 삭감의 선행조건이라면,그러한 조건이 결여된 현 시점에서 국방비 삭감을 논의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우리의 안보체제를 위해서 비생산적이며 바람직스럽지 않다. 새한국정부는 북한의 핵무기개발 위협에 현명하게 대처하고,앞서의 3가지 필요충분조건이 성숙될 때까지 현 수준의 국방비를 유지함으로써 한국의 안보를 공고히 해야 할 것이다.<미 이스턴 켄터키대 국제정치학 교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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