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의 일당 지배체제 붕괴는 정치에 있어서의 평범한 진리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정치가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면 결국은 파국을 면치 못한다는 점,그리고 절대적 집권세력은 항상 내부문제 때문에 위기를 맞는다는 사실이다.자민당은 「금권과 파벌정치」에 염증을 느낀 일본 국민들의 개혁요구를 제 때에 수용하지 못한 나머지 하타 쓰토무(우전자)가 이끄는 당내 소장 개혁파의 반란을 자초했다. 자민당은 지난 74년 록히드 뇌물사건이래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제기되어온 정치개혁의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담아내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는 38년 집권이 가져온 권력의 경직성과 오만함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심지어는 지난해부터 세계 곳곳에서 일기 시작한 깨끗한 정치를 위한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시대적 사조마저 거들떠 보지 못할 정도로 자민당은 이미 탄력성을 잃고 있었다.
자민당에 경종을 울리는 증후군은 많았다. 부패한 금권정치의 대명사가 된 가네마루(김환신) 전 자민당 부총재가 금고속에 숨겨둔 금괴와 현금을 압수당하는 모습이 TV에 비쳐지며 구속되자 일본 곳곳에서는 가네마루 화형식이 있었다.
정치불신 정도를 묻는 여론조사 결과가 80%선에 육박했던게 저간의 일본 사정이다. 고질적 파벌정치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민당 지도부는 비등한 국민여론을 수용하는데 시기를 놓쳤다. 스스로 화를 자초한 셈이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총리마저 『지금 정치개혁을 하지 못하면 우리 모두가 진흙탕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자민당은 막무가내였다.
이런 상황에서 차세대를 노리는 자민당의 소장개혁그룹이 선상 반란을 일으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 사회의 지배계급이 부단한 노력과 자기성찰을 통해 스스로의 잘못을 시정해나가려하지 않을 경우 항상 문제제기는 내부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같은 내부분열은 결국 붕괴를 불러일으키는 치명상이 되고 만다.
일본이 어떤 모습의 정치구도를 갖게 될지는 전적으로 다음달 18일에 실시될 총선에서 일본 국민들이 선택할 문제이다.
자민당이 절대 과반수 의석(2백56석) 확보에 실패할지라도 연정을 통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우선 관심사이다. 아니면 자민당 등 개혁파가 새로 만든 신당이 사회당과 공명당 등 기존의 야당과 「반자민 전선」을 펴 38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할지가 주목거리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분명한 것은 선거 때마다 절대 과반수 의석을 확보해 일당지배를 구가해왔던 자민당의 전성기가 끝났다는 사실이다. 자민당의 몰락은 일본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를 재촉할 것이며 그 핵심은 정치개혁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에서도 돈안드는 깨끗한 정치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강구되고,정치인들의 부패를 막기 위한 새로운 바람이 일어날게 틀림없다. 이같은 개혁의 주도세력은 미야자와 내각불신임 표결때 찬성표를 던지는 「창조적 모반」을 한 자민당내의 소장개혁그룹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의 몰락은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 이유는 일본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나라이고 그곳의 변화가 우리의 정치·경제·안보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에게 「외면할 수 없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더 큰 이유가 있다.
한국의 정치가 일본보다 낙후돼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일본도 사회의 다른분야에 비해 정치가 뒤떨어져 있는게 사실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해야만 했던게 한국정치의 현주소였다. 자민당을 염두에 두어가면서 단행했다는 91년의 3당 합당은 적잖은 정치불신을 초래했다. 특히 개혁정국에서 실체의 일부가 드러난 부패의 먹이사슬은 정치권이 부패의 중심고리였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다행히 우리는 32년만에 출범한 문민정부가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며 파격적인 개혁을 추진중에 있다. 그러나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넘어야할 고비가 아직도 많다. 사회 각분야의 개혁을 선도해야 할 정치개혁만 봐도 그렇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제도적으로 막기위한 공직자윤리법만 겨우 시행단계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정당법 정치자금법 각종 선거법 등 정치개혁 관련 입법은 논의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개혁의 중추적 성패가 달렸다고 볼 수 있는 경제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하다. 물론 연간 무역흑자가 1천억달러를 넘어선 경제대국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경제적 뒷받침이 없는 개혁은 자칫 허상으로 그칠 우려가 없지 않음을 경계해야 한다.
새정부의 개혁이 「위로부터의 단계」를 넘어서 국민 모두의 일이 되었다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개혁을 주도할 세력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에서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이 개혁의 요체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는 개혁을 위한 필요조건이지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집권당인 민자당의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민자당의 출범과정이나 궁극적 목표가 일본 자민당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민자당은 개혁의 향방을 설정하는데 있어 국민의 소리에 좀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개혁의 수위가 국민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거나 계파간 갈등을 재연시킨다면 일본 자민당의 경우가 좋은 선례가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있어 일본 정계의 지각변동이 「강건너 불」이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편집국장대리>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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