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군기법 운영엔 구멍/모호한 비밀분류 「보안」 흐려/지키기 어려운 규정 간소화·교육 강화해야현역 해군 소령의 군사기밀 유출사건은 군의 보안체제가 얼마나 허술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충격적인 일이다.
군사기밀을 빼돌린 고영철소령(40)이 대북정보를 책임지고 있는 국방정보본부서 근무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군내에서는 군사기밀을 관리·운영하는 제도와 절차는 외형적으로는 완벽에 가깝다.
군사기밀보호법과 시행령·시행규칙에는 비밀보관과 관리,파기 등의 절차가 매우 까다롭게 규정돼 있다.
군사기밀은 생산할 때부터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모든 비밀의 원문은 각급 부대시설안에서 생산하며 관련이 없는 사람의 접근이 통제된다. Ⅰ급비밀의 경우 별도 생산실을 설정,무장헌병을 배치해 출입자를 통제토록 돼있다. Ⅰ급비밀을 생산하는 부대도 국방부본부·합동참모본부·국방정보본부·각군본부 및 육군의 군사령부·국군기무사령부·7235부대·국군정보사령부로 한정돼 있다.
복제·복사원칙도 엄격해 비밀을 취급하는 실무자가 직접 복제·복사를 하고 비밀복사대장에 기록해야 하며 업무 종료후 즉시 실무자가 파기해야 한다. 이 절차도 비밀문건 일부를 복제·복사할 때나 가능하며 전제를 복제·복사하려면 생산문건과 같은 절차로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고 소령의 경우 관계자들로부터 비밀문건을 입수,전체를 복사해 시노하라 마사토씨에게 넘겨준 것으로 수사과정에서 드러나 실제로는 이같은 절차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
군사보안업무 시행규칙에는 비밀의 지출·대출·열람에 대해서 세부적인 규제를 하도록 규정돼 있다.
우선 비밀취급인가자로서 해당비밀을 취급하는 실무자에 한하며 병 및 고용직 공무원은 일절 지출·대출·열람을 할 수 없고 공사를 불문하고 개인의 집에 갖고 나갈 수 없다.
대출 및 열람은 해당 부대장이나 보관책임관의 확인을 받아 할 수 있으나 비밀대출부에 기록해야 하며 반드시 실무자의 입회아래서만 가능하게 돼있다.
그러나 이같은 엄격한 규칙에도 불구하고 실제 운영과정에서는 곳곳에 허점이 노출돼 있다는 것이 군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원칙과 규정이 너무 엄격하다보니 그대로 하다가는 업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는 말도 많다.
실제로 대부분의 군부대에서는 이같은 원칙이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비밀취급 인가증을 가진 사람도 업무와 관련된 비밀에 한해 실무자 입회하에 열람 등을 하도록 돼있지만 웬만한 사병도 손쉽게 열람하는 것이 일반화 돼있다.
국방부 등 정책부서는 워낙 비밀을 많이 다루고 있어 사정이 더욱 심각한다.
이번 사건도 관련자들이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고 소령에게 확인 등의 절차를 생략하고 열람·대출을 하게 했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추측이다.
현역 장교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보안교육을 강화해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복잡한 절차를 시행가능하도록 간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비밀을 열람하는 일이 잦은데 일일이 담당자에게 허락받고 기록부에 기록하다가는 정작 일을 하지도 못할 것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현행 군사기밀 관련법령의 또다른 문제점은 비밀의 범위와 정의가 너무 자의적이라는데 있다.
군사기밀보호법 등에는 군사비밀에 대해 「그 내용이 누설되는 경우 국가안전보장상 위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군사사항으로서 이 규칙에 의해 비밀로 분류된 것」이라고 모호하게 규정돼 있다.
이중 Ⅰ급비밀은 「누설되는 경우 외교관계가 단절되고 전쟁을 유발하며 군사방위계획,군사정보활동 및 군사방위상 필요불가결한 과학과 기술의 개발을 위태롭게 하는 등의 우려가 있는 비밀」로 돼있다. 또 Ⅱ급비밀은 「누설되는 경우가 군사방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비밀」로,Ⅲ급비밀은 「누설되는 경우 군사방위에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비밀」로 규정돼 있다.
이처럼 비밀의 정의와 분류가 애매모호하게 돼있어 비밀분류권자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웬만하면 비밀로 분류해놓음으로써 오히려 보안의식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대수롭지 않은 내용이 비밀로 분류돼 관리소홀을 야기시킨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군기법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헌법재판소의 위헌논란 시비가 일자 지난해부터 개정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군사기밀의 범위와 정의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비밀분류권자를 격상함으로써 오해의 시비를 줄이자는 취지이다.
군기법 개정은 지난해 개정안중 일부가 언론의 자율권 침해라는 지적으로 주춤하다 올들어 법제처 심의에 회부된 상태이지만 관련부서간의 이견으로 아직 국무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군내부의 해이해진 보안의식을 단적으로 드려내주면서 국가기밀과 취재보도의 한계를 되짚어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제도나 절차가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이를 취급하는 실무자들의 보안의식이 높아져야 한다는 점이다.<이충재기자>이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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