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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교육 “빈사위기”(고교교육을 살리자: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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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교육 “빈사위기”(고교교육을 살리자: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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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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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부족한 기자재/겉치레 그치는 실험/전문성 결여된 교사/수업도 “입시 점수따기” 암기 위주로/실습실 활성화·교원확충등 지원책 마련 시급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려면 외국기술을 도입,모방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자주적인 과학기술 역량을 갖추는 것이 절대절명의 과제다.

부족자원이 부족한 우리는 그동안 값싼 노동력에 의존,국제경쟁력을 유지해 왔으나 계속되는 임금상승으로 그같은 전략은 한계에 부딪쳤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돌파구는 과학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해내는 길밖에 없고,그 토대는 학교의 과학시간을 통해 마련된다는데 이론이 없다. 이에따라 교육부는 올해를 「과학교육의 해」로 정채 초중고교의 과학교육을 획기적으로 진흥시키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일선 고교의 과학교육은 교육부 의지만으로는 치유되기 힘들만큼 「빈사」상태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한국과학교육단체 총연합회장인 국민대 김창식교수는 지난달 2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학술토론회에서 「고사상태의 과학교육」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과학교육이 영영 말라 죽지나 않을지 두려움을 금할 길이 없다』는 말로 전문가들의 위기의식을 대변했다.

우리 고교의 과학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기에 이처럼 우려의 소리가 높은 것일까.

우리나라 과학교육의 실태는 아주대 정근모 석좌교수의 논문에서 잘 드러나 있다.

『중고교생의 70%는 과학시간에 모르는 것이 있어도 아예 질문을 하지 않는다. 38%는 과학과목을 공부할 때 우선 외우고 본다.

93%가 넘는 학생이 실험을 하고 싶어하지만 실제 한 학기에 한번도 못했거나 한두번 밖에 못한 학생이 전체 고교생의 81%나 된다.

과학교사들중 20% 이상이 스스로 실험지도에 자신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교장 3명중 1명이 자기학교 과학교사들의 실력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또 교사들 대다수가 과학교육의 실험실습이 수준이하라는 자체평가를 내리고 있다.

초중고교의 실험실 및 기자재 확보율은 50∼60%에 불과하며 그나마 기자재의 질이 낮고 한반의 학생수가 50명이 넘어 능률적인 실험교육이 불가능하다』

여기에 덧붙여 「우리나라 대학 신입생중 41%가 온도계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23%는 우물쭈물하면서 읽는다」는 한 조사결과는 우리나라 고교의 과학교육이 얼마나 형식적인가를 대변해 준다.

극단적으로 우리나라 고교의 과학교육은 대학입시를 위한 암기교육 수준에 머물고 있다.

용산고의 김홍석교사(30·화학)는 『종전 학력고사 과학문제가 교과서내 문제위주로 출제됐기 때문에 과학 수업시간에 실험실습은 굳이 할 필요가 없어 주입식으로 학습이 이뤄져 왔었다』고 말했다.

김 교사의 말대로 고교에서 과학실험은 실종된 상태다.

경기고의 경우 60명이 수업받을 수 있는 4개의 과학실이 있다. 그러나 이 학교의 S교사(60)는 『학습진도에 쫓기다 보면 한학기에 1∼2차례 실험수업을 하기가 힘든 실정』이라며 『그나마 「입시공부에 방해가 되니 교과서로 수업해달라」고 요구하는 학부모가 있다』고 말한다.

실험을 하려 해도 실험기구가 없어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교육부 발표에 의하면 현재 일선 고교의 실험실습 기자재 확보율은 평균 81.4%로 조사됐지만 대부분의 실험기구가 낡아 실제 실험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드물다.

서울 강남의 K고교 물리교사인 S씨는 『과학기자재의 가짓수는 많으나 대부분 영세상인을 통해 구입한 불량품이 많아 몇번 사용하면 망가지기 일쑤』라고 말한다.

과학교사들 사이에선 이처럼 조잡한 과학기자재를 관리하는 어려움을 풍자한 우스갯소리도 퍼져 있다.

『어느 고교에 갑자기 장학관이 들이닥쳐 과학실 관리상태를 둘러보게 됐다. 놀란 교장이 그동안 굳게 잠가뒀던 과학실 문을 열었다. 장학관은 먼지가 뽀얗게 낀채 비스듬히 끼운 지구의를 가리키며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라고 물었다­지구의 회전축은 23.44도 기울어져 있다­교장은 어쩔줄 몰라하며 「국산을 구입하다보니 벌써 저렇게 망가졌군요. 역시 외제를 사야하는데…」라고 대답했다』

다소 과장된 얘기겠지만 우리나라 고교의 열악한 과학교육 여건의 일단을 나타내고 있다.

설령 과학기자재가 완비돼 있는 경우라도 실험실습을 하는데는 또 다른 애로사항이 있다. 통상 고교의 과학과목 수업은 50분만에 끝난다. 교사 혼자서 50명이 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다보면 실험기구와 시약 등 실험준비를 하다 시간을 다보내게 된다.

원래 실험실습은 2∼3명이 1개조가 되는게 이상적이지만 우리 고교 형편상 대개 5∼6명이 1개조가 될 수 밖에 없어 3∼4명은 실험시간내내 시험관 한번 만져보지 못한다.

가뭄에 콩나듯 하는 실험시간은 이런 이유로 고정메뉴가 학교마다 정해져 있다. 생물의 경우엔 「현미경 관찰」 물리의 경우 「속도,가속도 측정」을 하면 실험을 때운 것으로 인정된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부는 각 고교에 실험조교를 채용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실험조교의 채용에 드는 비용은 가뜩이나 재정이 넉넉지 못한 일선 고교에서 부단토록 돼 있어 사실상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창문여고의 한 교사는 『신분보장도 되지 않는 실험조교로 누가 오겠느냐』며 『어쩌다 배정받는 실험조교도 실험과는 관계없는 잡무나 처리하다 떠나는게 보통』이라고 말한다.

닫혀있는 날이 더 많은 고교 과학실엔 시약들이 포장도 뜯겨지지 않은채 굳어있고 새로 구입한 실험기구도 녹이 슬어 마치 고물창고를 연상케 한다는 극단적인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교사들의 이같은 지적에 대해 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오랫동안 교육부의 장학편수실에서 장학관으로 근무하다 최근 일선고교 교장으로 부임한 H씨는 『과학교육의 문제는 1차적으로 과학교사의 의욕과 노력부족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H교장은 처음 부임한 뒤 교사들에게 『과학과목 수업은 과학실에서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사가 여전히 교실에서 수업하자 H교장은 한 교사를 특별히 지명해 『오늘 수업은 꼭 과학실에서 해보라』고 말했다. 그런데 H교장이 과학실에 가보니 그 교사는 참고서를 펴 놓고 수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교육부 장학편수실의 함수곤 편수관리관도 『현재 우리 고교의 과학교육 여건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시설만 탓할 수는 없다』며 『교사들도 스스로 질높은 과학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 평소 과학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던 과학교수가 일단 고3담임을 맡으면 학생들에게 『과학과목보다는 대학입시에서 비중이 큰 영어,수학을 열심히 공부하라』고 다그치면서 자신의 수업시간에 자율학습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정근모 아주대 석좌교수는 『지금까지의 대학입시제도가 줄곧 올바른 과학교육을 저해해 왔지만 앞으로 실시될 새 대입제도는 이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보다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판단된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고교 인문계의 경우 국어,영어,수학의 학습시간 배당은 과학과 비교해 1.6대 1,1대 1에 불과하나 대입 학력고사에서의 점수배점은 3.7대 3,0대 2.7로 3배 가량이나 많았다. 자연계열은 국어,영어,수학의 학습시간이 과학에 비해 0.7대 0,6대 0.8로 적은데도 학력고사 배점은 오히려 1.4대 1,5대 1.9로 많았다. 대학진학을 위해선 당연히 과학수업을 소홀히 할 수 밖에 없게 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94학년도부터 시행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선 계열에 구분없이 국어,영어,수학의 배점이 과학에 비해 1.9대 2,5대 1.6으로 더욱 높아져 상대적으로 고교 과학교육의 앞날은 더욱 어두워졌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이유를 들어 고사위기에 처한 고교 과학교육을 살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대학입시제도의 개선이 급선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구체적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탐구영역의 비중을 높이고 실험시간을 연장하는 한편,대학별 고사에서도 이공계 학과의 경우 과학과목의 비중을 높이고 주관식 위주의 출제를 하도록 대학입시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고교의 과학과목시간을 실험실습시간 위주로 늘리고 과학교사들의 실험지도능력 향상을 위한 재교육 기회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과학 우수교 선정/영등포고/학생들에 연 24시간 자율실험 실시/서클 연구활동 아낌없는 뒷받침도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영등포고등학교는 주입식 수업이 아닌 실험실습 위주의 내실있는 지도로 92년도 서울시내 과학교육 우수학교로 선정됐다.

변두리에 위치한데다 여느 인문계 고교와 다름없는 빠듯한 실험실습 예산,빈약한 실험기자재 등 영등포고가 과학교육 여건상 두드러진 점은 거의 없다.

그러나 교사들은 과학의 기초개념 이해,탐구력 신장,과학적 사고능력 등 과학교육 목표가 칠판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험실습실에서 달성된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 학교는 2학년 자연과정의 경우 학급당 실험시간이 연간 24시간을 웃돌 정도로 철저하게 실험실 수업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실험은 학생들 스스로 진행한다. 실험의 사전설계에서 평가까지 모든 과정에 학생의 참여기회를 높여 스스로 사고하고 탐구할 수 있게 별도의 실험보고서를 만들어 사용한다.

교실에서의 주입식 수업때 마지못해 따라오는 학생들도 실험실에서는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영등포고의 과학수업은 항상 활기 넘친다.

과학에 깊은 흥미를 가진 학생은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등 과목별로 조직된 과학반 활동을 통해 방과 후에도 탐구를 계속할 수 있다.

현재 과목별로 40명 안팎의 학생이 참여하는 영등포고의 과학반은 1주일에 한번 있는 특별활동시간을 위해 조직된 형식적 모임이 아니다. 수업이 끝나면 항상 개방된 실험실에 모여 담당교사의 지도를 받거나 선·후배간 자율체제로 수업시간에 못다푼 궁금증을 해소하며 과학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과학지식을 실생활에 활용하는 점도 이 학교 과학교육의 또 다른 특징이다.

주변식당에서 수거한 폐식용유를 이용,비누를 만들어 쓰기도 한다. 수은이 든 폐형광등·건전지의 수거함을 교실에 설치하고 교사들이 실험실 폐수정화조를 직접 제작해 이용하는 것 등도 환경보전활동을 몸에 배게 하려는 살아있는 과학교육인 것이다.

교사들의 열의에 학교측도 호응,보잘 것 없는 실험실습비나마 과학부에 집행을 일임하고,기자재 구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개최한 과학학력 경진대회는 역시 과학고생들이 휩쓸었지만 영등포고는 화학부문에서 금상을 획득해 다른 인문계 학교 교사들의 부러움을 샀다.

『일부 학부모들이 입시 위주의 교육을 실시하라고 항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창의력과 응용력이 요구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정착되면 사정이 달라질 겁니다. 창의력과 응용력은 주입식 교실수업에서는 길러지지 않습니다』 이 학교 과학주임 김종욱교사(57)의 믿음이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이원락·김현수·장인철·여동은·남경욱·이진동·현상엽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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