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밟고 올라가기(장명수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밟고 올라가기(장명수칼럼)

입력
1993.06.24 00:00
0 0

공보처가 코리아 리서치에 의뢰하여 실시한 교육계 촌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전국 초 중 고교생,교사,학부모,교육행정 공무원 등 1천3백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학부모와 교사의 90% 이상이 시민단체의 촌지추방 서명운동에 동참하겠다고 밝혔으며,교육부조리 척결을 위해서는 교육비를 추가 부담할 용의가 있다는 사람이 70%나 됐다.촌지를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나 그것을 없애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처음엔 어떤 학부모들이 선생님에게 돈을 주게 된 것은 내 아이의 스승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겠지만,차츰 『내 아이를 특별히 잘봐달라』는 배타적 이기주의로 변질되었고,다른 학부모들은 내 아이가 상대적인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돈봉투를 들고 선생님을 찾게 됐다.

이 조사에서 교사의 86.3%가 학부모로부터 돈이나 선물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밝혔는데,서울의 국교 교사가 특히 높아 95%에 이르고 있다.

교육계의 촌지는 그것이 교육현장에서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한층 더 부작용이 심각하다. 어머니와 선생님 사이에 돈봉투가 오가고,돈봉투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대부분의 학생들이 눈치채고 있는데도 여전히 그런 일이 지속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다른 아이를 제치고 내 아이를 잘봐달라는 학부모의 이기심은 결국 타인을 짓밟고라도 나만은 올라서야 한다는 끔찍한 생각을 아이들에게 심어줄 것이다. 돈을 받은 만큼 성의를 보이려는 선생님의 태도는 아이들에게 불신과 상처를 남기고,돈많은 사람이 왕이라는 사고방식을 갖게 할 것이다.

이 조사에서 학부모의 86.7%가 『학교 교사를 만나는 일에 부담을 느낀다』고 밝혔고,교사의 90%가 『학부모들이 교사면담에 부담을 느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대답했는데,이것이 바로 우리 교육의 서글픈 현장이다.

교육계의 촌지추방운동은 단순한 부패척결운동이 아니다. 다른 아이를 제치고,다른 아이를 짓밟고,내 아이를 앞장서게 하겠다는 학부모들의 야비한 욕망을 교실에서 몰아내는 것이 바로 촌지추방이다. 촌지로 「특별대우」를 사겠다는 학부모들은 그 「특별대우」가 과연 어떤 인간을 키우게 될 것인지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부조리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면 교육세를 추가부담할 용의가 있다는 70%의 응답이다. 막대한 괴외비와 촌지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차라리 이 돈을 교육풍토 개선에 쓴다면 얼마나 보람이 있을 것인가』라고 개탄하고 있다. 그들 양식을 가진 학부모들의 힘을 어떻게 모으느냐에 촌지추방과 교육개혁의 열쇠가 있을 것이다.<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