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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 피해가족협」 추진/전 충주 MBC 사장 유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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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 피해가족협」 추진/전 충주 MBC 사장 유호씨

입력
1993.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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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 생각하면 요즘도 소름이…”/신군부 “직원정리” 지시… 거부로 눈엣가시/온갖 죄목날조 「군부대 순화교육대상」에/하루 16시간 “훈련반 기합반”『삼청교육대를 생각하면 요즘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납니다』

80년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갖은 고역을 치른 당시 충주 MBC 사장 유호씨(65·충북 충주시 역전동 무궁화연립 나동 303호)는 삼청교육의 진상이 역사속에 묻혀져 버리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유씨가 삼청교육 대상이 됐던 것은 입소자중 상당수가 그랬듯이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명예와 위신이 실추될대로 실추되고 생업마저 빼앗겼다.

유씨는 국보위의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가 발표된지 닷새째인 80년 8월8일 하오 6시께 충주 MBC 사옥부근 다방에서 끌려갔다.

친구와 얘기를 나누던 유씨에게 충주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다가와 『할말이 있다』며 동행을 요구,경찰서로 연행해갔다.

경찰은 진술조서 한장 받지않고 곧바로 유치장에 가두었고 유씨의 이유를 묻는 항의에 『죄지은 사람이 말이 많다』는 한마디로 묵살했다. 유치장에는 이미 30여명의 청년들이 영문을 모른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지샌뒤 새벽에 버스에 실려 괴산의 37사단 삼청교육부대로 이송됐다. 머리를 삭발당한채 유씨는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팔팔한 나이의 젊은이들 틈에 섞여 「유격훈련」 「PT체조」 「멸공봉체조」 등 혹독한 군사훈련과 기합을 견뎌내야만 했다.

입소 1주일쯤 됐을 때 유씨는 뉴스를 통해 자신의 죄목을 처음 들었다. 당시 군·검·경 합동단속반의 발표에 의하면 유씨는 직위를 이용해 부동산투기를 일삼고 자신소유 음식점에서 기관장들에게 향응을 베풀었으며 축첩까지 한 혐의였다.

음식점을 갖고 있지도 않은데다 평소 자주가는 식당의 여주인이 첩으로 둔갑한 「얼토당토 않은」 내용이었다. 땅투기부분은 회사명의로 구입한 신사옥 부지를 트집잡은 것이다.

유씨는 『당시 계엄당국의 보도검열을 수차례 거부해온데다 언론통폐합을 앞두고 「직원중 정화대상자를 가려 퇴직시키라」는 지시를 이행하지 않아 미움을 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말한다.

유씨는 또 『88년 국회 언론청문회에서 당시 민주당 박관용의원(현 청와대 비서실장)도 내가 억울하게 피해를 보았음을 지적하고 국보위가 언론통폐합을 위해 말 안듣는 언론을 길들이기 위해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비난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날조된 죄목으로 3주간의 순화교육끝에 출소한뒤에도 「죄인」이란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렸다는 유씨는 『삼청교육 대상자중 상당수가 교육이 끝난뒤 6개월간의 근로봉사를 거쳐 7년이하의 보호감호 처분을 받아 군부대 감호소와 청송감호소에서 수감생활을 해야만 했던 점에 비춰볼 때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민주당 강창성의원 등과 공동으로 전국적 규모의 「공권력피해가족협의회」(가칭) 결성을 추진중인 유씨는 『두번 다시 이 땅에 삼청과 같은 역사적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며 여생을 삼청만행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해 힘쓰겠다고 다짐했다.<충주=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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