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하인데도 지방에서는 때아닌 사정한파가 몰아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청와대 사정담당 비서실에서 직접 암행요원을 보내 지방의 비리인사에 관한 정보를 얻고 검찰의 내사자료마저 종합,4백여명의 지탄대상인사 명단을 만들어 관계기관에 비리척결 및 사법처리를 통보한데 따른 것이라고 한다.이같은 지방사정의 확대는 새정부가 들어선후 지금껏 사정활동이 중앙 및 표본적 대형비리에만 치중되어왔던 만큼 그 필요·타당성이 일견 인정될 수도 있겠다. 또 우리 사회를 좀 먹어온 총체적 비리증후군이 지역·사람을 가릴 것 없이 저변에 확산된 것이 사실이므로 지역사회에서 비리를 상습화해온 관·경·언 등의 유력인사들도 차제에 개혁차원에서 법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한가지 걱정이 앞서는 것은 사정당위론과 다른 차원인 그 방법론에 관해서이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 고질이라면 총체적 부정과 함께 관주도의 경직된 타율사회라는 것인데,어쩌자고 이번에도 그 한계를 못벗어나는지가 궁금하다. 검·경 등 사정기관들이 지방에도 엄연히 상주하고 있고 법원 등 사법기관도 있어,지탄·진정된 유력기관이나 인사들의 비리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자율로 사정을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알려진 바로는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또 청와대의 암행요원들이 전국을 직접 누벼왔다고 한다. 이같은 방법은 3·5·6공 시절의 토끼몰이식 암행사정을 쉽사리 연상하게 하는 것이다.
중앙에서의 여론사정과 지방의 민생사정은 여러모로 구분하는 지혜도 이제는 필요할 때이다. 중앙의 사정에서는 오랫동안 고여온 탁한 윗물에 대해 법의 차원을 넘어 여론에 따라 응징함으로써 시대정신을 착근시는 상징성이 있었지만 지방사정은 경우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엄연한 법치국가인데 법과 제도에 따라 각각 맡아있는 분야별로 지방의 사정기관들이 일상적으로 사정을 하면 그만이다.
그래야만 이미 거듭날 것을 서약한 검·경·국세청 등 사정기관들이 청와대 등 상급기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율사정하는 자세를 확립할 수 있다. 또 때아닌 마녀사냥식 사정한파로 민생을 위축시키고 인권과 법을 짓밟을 수 있는 위험도 두루 경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의 우리 사회는 사정의 열기와 비리척결 러시가 고조되면서 투서·진정사태가 줄을 잇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감춰졌던 온갖 사건들이 지방에서도 연일 노출되어 지방언론 사주,학원이사장,지방의회 의원,권력기관 관련자 등이 구속되는 일이 쉴새 없었다. 이런참에 지방의 비리인사 척결을 위해 또 청와대 주도의 대대적 사정몰이를 행한다는건 목적은 좋겠지만 실제효과는 미지수일 수도 있다. 사정일손이 달리는데다 지역의 민생안정을 뒤흔들고 인권유린과 탈법의 위험까지 있는 일이고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사정추진의 강도와 효과가 엷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당국의 지방사정 수행에 보다 신중한 판단이 있기를 당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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