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화” 여론조성 노린 고육책국방부가 용산 미군기지 이전을 『당초대로 추진하지만 연기가 불가피하다』고 애매한 입장을 밝힌 것은 최근의 재검토 여론을 감안한 무기연기를 뜻하는 것으로 계획 자체의 백지화까지를 상정한 여건조성의 의미를 지닌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문민정부 출범이후 경제적 이유 등 실질적인 어려움이 여러가지 드러나자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기지이전에 드는 막대한 비용의 조달문제였다.
90년 6월 한미 합의각서를 체결한뒤 우리측은 91년에 총 1조8천억원의 이전비용을 예상했었고 미국은 17억달러를 제시했으나 92년에는 다시 5배가 넘는 95억달러로 수정제의해왔다.
이 무렵부터 이미 정부내에서는 과연 수조원이 넘는 예산을 들이면서까지 미군기지를 옮길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이 공감대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합의각서 체결당시 주한미군 철수계획이 단계적으로 진행돼 이전규모와 부담이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가 올해부터 2단계 철수계획이 보류되는 등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도 재검토 요인이다.
자연히 실무추진 과정에서도 한미간의 이견때문에 진척이 전혀 없었다. 기지이전에 관한 기본 합의각서상 이전시기 목표를 96∼97년으로 설정하고 이전종합계획(마스터 플랜)을 올해까지 완성한다는 목표아래 실무협상이 시작됐으나 종합계획 마련을 위한 설계회사 용역문제에서부터 의견이 맞서 한발짝의 진전도 보지 못했다.
이같은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애매모호한 설명을 하면서 사업추진을 하겠다고 밝힌 것은 민족자존이라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반미감정은 차치하고라도 국민들의 기대가 부풀어 있는 상황에서 「이전 유보」를 발표하는 것은 자칫 민족자존의 퇴색으로 비쳐질 수 있는 상황이다.
여론을 가장 중시하는 현 정부는 당초 이같은 문제점을 감안,공식발표없이 사업추진을 미루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재검토입장이 노출되자 오산 일대 26만평에 고시된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등 문제가 엉뚱한 방향으로 번져 우여곡절끝에 애매한 입장을 표명하게 됐다.
그러나 기약없는 이전을 「추진」이라는 포장으로 덮어버린 것은 정부로서 떳떳치 못한 태도라는 지적도 일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국민들간에는 재정형편 등을 이유로 유보를 찬성하는 현실론과 민족자존을 내세우는 명분론 등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다. 따라서 여론조사·공청회 등 국민들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이다.<이충재기자>이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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