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획원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문제가 본격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경제기획원이 구 시대적 정부조직 청산의 제1호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원 폐지론은 주로 「얼굴없는 당국자들」과 몇몇 영향력있는 관변 행정학자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이들은 기획원의 예산편성권을 청와대나 총리실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산편성권 없는 기획원은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여서 이는 곧 기획원을 폐지하자는 것과 같다.군부 독재정권의 정책수요에 의해 창설된 기획원인지라 문민시대에는 없어져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무척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다. 청와대에 예산편성권을 넘길 경우 청와대의 비대화는 불가피하다. 이는 김영삼대통령의 「작고 강력한 정부」 구현에 정면 배치된다. 최고권부가 예산편성권을 직접 행사하는 나라도 거의 없다. 미국의 경우 예산국이 대통령 직속기구이지만 그 기능은 우리나라의 예산실과 아주 다르다. 미국은 사실상 의회가 예산편성권을 쥐고 있고 예산국은 예산집행업무에 관한 사무기능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대통령책임제에서 총리가 예산편성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또 정책조정기능의 주체도 애매하다. 정책조정은 성공도 많지만 실패도 적지않다. 부처간의 불협화음이니 부처이기주의니 「원론 찬성,각론 반대」니 하는 볼썽 사나운 현상들이 발생할 때마다 청와대가 일일이 직접 간여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책조정 실패의 책임을 대통령이 직접 져야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정책조정의 악역은 기획원 같은 조직이 담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산편성권을 경제팀에서 떼어내는 것은 세계조류에 역행한다. 세계는 지금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다. 거의 모든 나라들이 경제부처에 힘을 실어주는 등 경제전쟁에서 이기는 방향으로 정부조직을 재정비해 나가고 있다. 과거 청산에만 집착한 나머지 정부조직 개편작업이 세계조류에 역류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면 큰 일이다.
기획원도 반성할게 많다. 주어진 기능에 비해 조직이 너무 비대화되어 있다. 민간부문에만 구조개혁을 요구할게 아니라 기획원 스스로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